2007년 12월 08일
식탁이야기 5

그녀는 머리를 감고 나와 라디오를 켠다. 그녀가 항상 듣는 음악 프로그램의 디제이는 오늘 눈이 올 거라고 알려준다.
조지 마이클의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틀어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음악소리에 맞춰 탁탁탁 수건으로 머리를 두드려 말린다. 방을 빙그르 돌면서 내 쪽으로 와 커피 잔 하나 내려놓을 틈 없이 어질러져 있던 나를 치우기 시작한다. 영화잡지 한 권에 신간 한 권, 노트 두 권을 나란히 쌓아올리고 커피가 말라붙은 머그와 빵가루가 떨어져 있는 접시는 싱크대로 보낸다. 필기도구, 메모지, 비닐봉지, 가위, 귀걸이, 콤팩트도 하나하나 제자리로 돌려보낸다. 행주로 내 위를 말끔히 훔친다. 나를 행주로 닦아준 게 얼마만인가. 얼굴을 비추면 선명하게 비칠 정도로 깨끗하게 오래 공들여 닦았다. 청소기를 돌리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잠시 후 내 앞에 나타난 그녀는 길에서 만났더라면 몰라봤을 것이다. 가슴께가 파인 흰색 스웨터에 체크무늬 니랭스 스커트를 입고 스타킹까지 챙겨 신었다. 머리는 드라이를 해서 하나로 올려 묶었다. 화장품 파우치를 내 위에 가져다놓고 화장을 시작한다. 그녀가 마스카라에 이어 립스틱을 정성들여 바른 뒤 화장지에 입술 모양을 찍고 나서 채 일 분도 지나지 않아 초인종이 울렸다.
방문객이었다. 첫 번째 방문객.
사람보다 꽃다발이 먼저 집 안으로 들어왔다. 꽃다발을 그녀에게 내밀며 이어 방문객의 놀란 얼굴이 따라 들어왔다.
“어서 와.”
그녀는 방문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얼결에 그녀의 손을 잡은 방문객은 그녀보다 머리통 하나가 작고 머리도 짧았다. 볼이 통통하고 흰 피부 때문인지 귀여운 인상을 주는 얼굴이었다. 여자는 그녀와 실내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커피 줄까?”
“밥은 해 먹고 사니?”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을 뜻밖에 덤덤했다.
“그럼. 이래 뵈도 장 봐다가 직접 해먹어.”
여자는 그녀의 몸을 위 아래로 훑어본다. 밥을 잘 챙겨 먹는다는 사람치곤 지나치게 말랐다.
“언제 돌아온 거야?”
“한 달쯤 전에.”
커피머신에 물을 올리고 그녀는 여자를 향해 나를 가리켰다. 여자는 오른편 의자를 하나 빼서 앉았다. 두 손을 내 위에 올리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커피 물 떨어지는 소리가 다르륵 다르륵 난다. 이윽고 여자는 고개를 들고 입을 연다.
“너 죽었다는 소문까지 났었어. 그렇게 떠나버리면 어떡하니?”
“그럼, 마이크로 방송하고 떠나야 되는 거야?”
그녀는 커피를 잔에 따라 여자에게 내민다. 대화의 내용과 상관없이 커피 향은 일품이다.
“아픈 덴 없구?”
“응. 보다시피. 너한테 부탁이 있어서 연락했어.”
“뭔데?”
“나 취직 좀 시켜주라.”
여자는 미심쩍은 얼굴로, 오래 그녀를 쳐다본다
“괜찮겠어?”
“그럼. 그동안 프리랜서로도 일했는 걸. 일단 먹고는 살아야지.”
“그래, 알아는 볼게.”
“꼭 부탁한다. 진짜 좋은 친구는 돈 벌게 해주는 친구래. 하하하”
“놀리는 거니? 나 좋은 친구 아니잖아.”
“그러니까 지금부터 좋은 친구 하면 되잖아.”
여자는 대답 없이 커피를 마신다. 얼굴은 점점 굳어지다 드디어 참을 만큼 참았다는 표정이 된다.
“나한테 연락하지 말지 그랬니?”
“그래도 나도 너도 이렇게 여기 와 있잖아.”
여자가 일어선다. 그녀가 여자의 오른 팔을 꽉 잡는다. (to be continued)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 by | 2007/12/08 20:32 | 사물들의 이야기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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