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31일
짧은 이야기 36- 소래포구에서

그는 뜬금없이 개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가 보신탕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익히 아는지라
또 회가 동하나 보군, 하고 대충 흘려들었다
그러면 보통 그는 몇 번 말하다 포기한다
그런데 오늘은 그 말을 들으니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말 그대로 뜬금없는 제안 아닌가.
바야흐로 천지가 진동하며 봄기운을 뿜어내고
꽃이 만발하여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예쁜 꽃과 연두빛 새싹에 가슴이 울렁거리는 봄이다
이런 날 개고기라니...
"넌 언제 인생을 좀 알래?'
나는 기어코 한 마디 쏘아붙였다
이번에는 그가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무슨 소리야?"
"넌 이런 화창한 봄날에 개고기 먹으러 가자는 말이 나오냐?"
하하하하하하하
그의 웃음은 좀체 그치지 않았다
그러더니 그가 내 어깨를 좀 심하게 세게 쳤다
"야, 왜 그래? 너 미쳤어?"
"너야말로 언제 인생을 좀 알건데?
내가 언제 너한테 개고기 먹으러 가자고 했냐?
게 먹으러 가자고 했지? 갑각류의 제왕 '게'말이야."
아하... 내 얼굴은 아마 삶은 게보다 더 빨갛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그러니까 네가 발음을 잘 했어야지."
나의 궁색한 변명이 그에게 먹힐 리가 없다.
"너야말로 폭넓은 대화를 경청할 준비를 좀 해라.
이 봄을 맞이하야...."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의 원대한 계획에 따라 소래포구로 갔다
사전조사에 철저한 그의 성격대로 진행은 일사천리였다.
전철 타고 오이도 가서 버스 갈아타고 내려야할 정거장까지
빼곡히 메모된 수첩을 꺼내서 나한테 제일 게찜을 잘한다는
식당 이름을 보여주었다
다른 방법도 있다고 했다
수산시장에서 직접 게를 사서 식당에 가져가면
오천원의 수고료를 받고 쪄준다고도 했다
아무려나 맛있는 게를 제철에 먹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소래포구는 생각보다 작았다
바다도 아파트에 둘러싸여 탁 트인 맛이 없고 갯벌만 허옇게 드러나 있었다
이것도 바다라고... 나는 좀 실망스러웠다
버스에서 내려 그 옛날 협궤철도가 다녔다는 철교를 건너면서 마음이 좀 풀렸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건지
건너편 소래시장에서 넘어오는 건지
온통 바다냄새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철교 틈에는 분홍빛 조그만 들꽃과 풀들이 여린 잎을
땅위로 내밀며 세상 구경, 사람 구경을 하는 중이었다
"어쨌든 바깥바람, 바닷바람을 쏘이니까 좋긴 좋구나..."
나는 두 팔을 활짝 벌려 그를 껴안아주었다
지나가는 할아버지의 헛기침소리조차 달콤했다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킹크랩과 대게가 다른 종류라는 사실을...
내 눈썰미로 그것의 모양이 어떻게 다른지 맛이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킹크랩이 조금 더 비쌌다
맛은 대게가 낫다는 그의 믿을 수 없는 설명을 듣고 대게를 사서 식당에 가져갔다
식당은 대낮부터 소주에 회와 매운탕을 놓고 술판을 벌인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게를 앞에 놓고 술을 마시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프로술군답지 않은 처사 같아서 좀 챙피했다
"게가 좀 비싸냐. 우리가 좀 럭셔리해서 그런 거니까 네가 이해를 해라."
손가락보다 굵고 긴 대게 다리를 가위로 잘라 그 속에 있는 살을
젓가락으로 파내니 제법 먹을 게 많았다
살이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씹을 틈도 없이 술술 넘어갔다
소주의 쓴맛조차 감로수 같았다
"내가 눈먼 돈 생길 때마다 맛있는 거 사준다고 약속했잖냐."
입술에 게살이 붙은지도 모르고 열심히 먹으면서 그가 말했다
"무슨 눈먼 돈?"
"왜? 호스트바에라도 나갔을까봐 그렇게 놀라냐?"
"넌 말을 해도 꼭 그 수준으로 하냐?"
"친구 형네 가게 페인트 칠하는 거 도와줬더니
십만원 주더라구. 그걸로 술마셔 버리면 너무 허무하잖아."
"자알 했어. 넌 가끔 이렇게 귀여운 맛이 있어서 내가 데리고 다닌다."
"이게..."
그는 게다리 하나를 집어 나한테 던졌다.
"아유, 제일 통통한 거네."
"그래. 많이 먹어라. 많이 먹고 살 통통 쪄랴."
"왜? 그렇게 살찌면 잡아먹으려구?"
"내가 말을 말아야지."
오늘은 그의 눈흘기는 얼굴도 멋있다.
"캬,좋다. 소주 맛도 기가 막히고 봄 날씨도 죽인다."
그의 시선은 식당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철교 옆 벚꽃에 가 있었다
참 이쁘다.
이런 봄날이 언제까지나 계속 되면 좋으련만...
이렇게 술맛 좋은 날이 일년에 몇 번이나 될까...카아...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 by | 2008/03/31 13:33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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