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38 - 굴비



"선물이야."
신문지에 돌돌 말아서 싼 길쭉한 물건이 비닐 봉지에 담겨 있었다.
"이게 뭐야?"
"약이야."
신문지 위에는 시청 앞에서 데모 중인 재개발 아파트 기사가 있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입주자로 보이는 할머니가 들고 있는 피켓에 쓴 문구를 읽으며 내가 물었다
"약? 무슨 약?"
저 노인은 그렇게 오래 살고도 모르는 것일까. 하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다.
세상은 질문에 잘 대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질문을 싫어하고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질문을 한 자에게 응징으로 대답한다는 것을.
"묻지 말고 일단 풀어봐."
"도대체 뭔데 이렇게 멋대가리 없게 생겼냐?'
비닐봉지를 열고 신문지를 풀었다
그 안에 또 다시 은박지로 싼 물고기 모양의 물건이 나타났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올려다보고 다시 그 물건을 한참 쳐다본 다음 풀어봤다
살짝 구워진 보기 좋은 모양의 굴비 한 마리.
꽁꽁 갇혀 있다가 풀려난 고소한 냄새가
이게 웬 떡이냐는 듯 부랴부랴 밖으로 뛰쳐나왔다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점심때 밥에 물 말아서 굴비 한 점 올려서 먹어봐.
천리만큼 달아났던 입맛도 돌아올 거야."
"와, 이거 진짜 영광굴비 같은데... 맛있겠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알맞은 크기의 굴비는 정말 맛있어 보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이 돌아온 느낌이었다
짜아식, 센스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냄새가 좀 세지? 얼른 도로 싸놔."
그는 숙쓰러운 듯 말했다
커피숍에서 풀어보기 조금 민망한 냄새의 선물이긴 하다.
난생 처음으로 드넓은 바다를 헤엄치던 물고기가 어부에게 잡혀
시장에서 밥상까지 올아오는 그 노정을 생각했다
중간에 그의 손을 잠깐 거쳤다온 그 별난 경로를.
확실하다
나의 입맛은 유턴을 할 것이다
물고기처럼 헤엄쳐 내게 돌아올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선, 굴비처럼.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질문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오래된 아파트를 떠나 어디로 갔을까?
질문을 안 하려고 해도 정말 궁금하다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by 오제이 | 2008/04/08 09:29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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