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39 - 신호등 너머




네가 저기 서 있다
빨간불 아래서 손을 깍지끼고 두리번거린다
신호등이 바뀌면 너를 만날 수 있다
하나 둘 셋 넷...
나는 숫자를 세며 빨간불을 노려본다

그런데
그런데
나는 신호등을 그냥 지나친다
너는 저기 서 있는데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는다

첫키스의 추억은 날카롭지 않다고 말하며 너는 웃었었다
손을 뻗으면 네 입술이 닿을 듯 가까이 있는데
나는 이 길을 건너지 못한다

너는 오늘 분명 내게 물을 것이다
왜 이렇게 손이 차가워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죠?
밥은 왜 남겼어요?
오늘 내 눈 한번도 안 쳐다본 거 알아요?
나한테 할 말 있죠?

나는 아직 답을 준비하지 못했다
너는 수십 개 수백 개 물을 말들이 있을 것이다
너는 질문을 그치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답을 말할 수 없을 것이기에
나는 신호등을 건너지 못한다

저기 네가  깍지를 풀고 시계를 본다
나는 네게서 점점 더 멀어진다
이제 신호등 색깔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by 오제이 | 2008/04/16 23:40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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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4/19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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