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44- 토끼풀 반지



사람들이 이 꽃을 왜 토끼풀이라고 불렀는지 모르겠다
클로버라고 제법 산뜻한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 역시 토끼풀이라는 이름이 제격이다
토끼가 이 풀을 먹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꽃 모양이 토끼를 닮은 것도 아닌데 왜 하필 토끼풀일까
혹시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것 같은 흰 빛깔의 탐스러운 꽃송이가
토끼털을 닮아서 그런 건 아닐까

참, 이름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지.
반지를 얘기를 하고 싶었다
여섯 살 때 처음으로 손가락에 반지라는 걸
꼈던 그 역사적인 사건의 주인공 얘기 말이다
그때 동네 풀밭에 토끼풀이 지천이지 않았다면
반지를 끼는 경험은 훨씬 뒤로 미뤄졌을 것이다
토끼풀 다음으로 껴본 반지는 열 살 때
소풍 가서 환타 캔 꼬다리를 손에 끼워본 거였다
알루미늄이긴 해도 금속은 금속이니까
반지의 원형에 훨씬 더 가깝긴 하다

여섯 살 때 반지를 껴보고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손이 무겁다는 듯 내내 손을 들고
손가락도 못 오므리고 앞으로 뻗은 채 돌아다녔다
저녁 때가 되어 꽃이 시들고 반쯤 말랐을 때조차
그것을 빼버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저녁밥을 먹으라던 엄마가 내가 손가락을 뻗치고 오무리질 못하니까
그깐 반지는 왜 아직 끼고 있냐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풀어버렸다
아 그때의 기분이라니...
너무 홀가분하고 편하고 자유로웠다
강아지 목에서 사슬을 풀어주면 그런 기분일 것 같았다

몇 십년이 지난 지금 다시 토끼풀 반지를 껴본다
손이 커져버려서 토끼풀 반지는 그저 하나의
꽃잎처럼 작게 자리잡았다
무겁지도 않고 거추장스럽지도 않다
다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맡아지지 않는
그 미미한 풀냄새만은 그때와 똑같았다
손을 들어 꽃냄새를 맡아본다
소박한 꽃에 비해 꽃냄새는 꽤나 매혹적이다
어렴풋하게 장미향을 닮은 것도 같다

반쯤 마른 토끼풀 반지를 빼서 책갈피에 끼운다
말리기엔 좀 투박하고 멋대가리 없는 꽃이지만
반지를 함부로 빼버리는 것은
꽃에게도 반지에게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당분간은 잉크 냄새 맡으며 책속에 갇혀 있으라고 놔둔다

그런데 아직도 궁금하다
왜 이 꽃의 이름이 토끼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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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이 | 2008/05/03 10:18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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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5/0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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