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45 - 눈물




우리 몸에 담고 있는 것들이 제 자리를 벗어나
밖으로 나오면 우린 더럽다고 눈살을 찌푸린다
코딱지도 귀지도 오줌도 똥도 방귀도 때도
심지어 자기 입에 담고 있던 침도 밖으로 나오면 역겹다

더럽지 않은 것이 딱 하나 있다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가끔, 아니 자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기로도 쓴다
눈물!
눈물만이 자기 자리인 눈을 떠나 세상으로 흘러나와도 더럽지 않다
오히려 세상을, 거친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는 역할을 자처한다

어느 눈물 많은 여인에게서 눈물의 기원에 대해 들었다
자신의 눈물 많음을 변명하기 위해 지어낸 얘기라고 다들 비웃었다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이거나 얘기란 모름지기 재밌으면 되는 거 아냐, 한 사람이 말했다
어쨌거나 나름 유머도 있고 페이소스도 있고 해서 여기에 전한다 

옛날, 한 여자가 살았었다
그 여자는 보석을 무척 좋아해서
자신에게 보석을 갖다바치는 자에게 보답으로 원하는 건 무엇이든 주었다
그들은 제각기 아름다운 그녀와의 식사를, 키스를, 포옹을 원했다
그녀는 보석만 가질 수 있다면 아까울 것이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를 가져온 남자는 황홀한 잠자리를 원했다
그녀와 잠을 자고난 남자는 그녀에게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남자는 매력적이었지만 그녀에게 줄 것이 더 이상 없는 남자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새로운 보석이 생길 때 다시 찾아오라며 돌려보냈다

그녀의 몸은 보석으로 빛났고
그녀의 방 또한 보석으로 휘황했다
그녀의 미소는 더욱 아름답게 빛났고
보석과 함께 그녀는 나날이 더욱 아름다워졌다
그녀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탄했지만
곧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해 가까이 오려고는 하지 않았다

어느 날 한 남자가 그녀에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는
귀한 보석이 박힌 반지를 선물했다
그녀의 손가락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보다 영롱한 그 보석을 보면서
그녀는 남자에게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주겠다고 뜨거운 눈길로 말했다
대저택을 줄 수도 있고 넓은 땅을 줄 수도 있었다
남자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자신과의 하룻밤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예상치 않은 반응에 당황한 그녀는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세상 사람들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만큼 욕심이 많은 남자에게 그것이 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똑바로 쳐들고 그녀의 눈을 쏘아보며 당신의 눈물이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자신은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것일지라도 자신조차 눈물을 본 적이 없었다
남자는 그것이 아니라면 어느 것도 갖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녀는 그깟것 여태껏 필요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별로 필요하지 않을 테니 맘대로 가져가라고 했다
남자는 앞으로 당신이 울고 싶은 일이 생기면 눈물 대신 보석이 눈에서 떨어질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의 믿을 수 없는 말을 한껏 관대한 표정으로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두 손을 펼쳐 그녀 얼굴로 가져가 눈 아래 갖다댔다
눈을 감고 한참 중얼거리더니 무언가 소중한 것을 움켜쥔 듯 두 손을 꼭 쥐고 돌아갔다

세월이 흘렀다
그녀의 방과 몸은 보석으로 차고 넘쳤다
그녀의 얼굴에서 아름다움과 젊음이 흐려지고
미소도 빛을 잃었다
그녀에게 보석을 갖다 바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었다
대신 얼굴에는 주름이 생겼고 흰 머리칼이 늘어갔다
오래 앉았다 일어나거나 많이 걸으면 무릎이 시큰거렸다
그녀가 가진 거라곤 이따금 말을 거는 여종과 보석뿐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실로 오랜만에 거울을 보았다
거기엔 늙고 가엾은 한 노파가 서 있었다
사랑을 해본 적도 사랑을 잃어본 적도 없이 늙어버린 여자를 보면서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눈에서 보석이 떨어졌다
그녀가 가진 그 어느 것보다 아름다운 보석이었다
그녀는 손을 내둘렀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아냐, 이게 아니야,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

자신이 가진 보석을 다 돌려주고라도 되찾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런 마음이 들수록 그녀의 비명소리는 날카로워졌고
눈에서는 보석이 쏟아졌다
그래도 그녀는 비명을 멈출 수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은 이제 단 한순간도 삶을 이어갈 수 없음을 알았다
세상의 거울이 다 깨질만큼 큰 소리로 울었지만
눈물은 단 한방울도 흘러내리지 않았다
방안은 점점 더 많은 보석으로 채워졌다
그녀는 얼마 안 가 보석에 파묻혀 숨을 거두었다

이 얘기를 전해준 눈물 많은 여자는 한 마디 덧붙였다
그 후로 여자들이 눈물을 흘릴 때면 보석처럼 동그란 눈물이 떼구르 굴러떨어진다고 했다
자세히 보라고 남자는 절대로 그런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고 했다
눈물을 흘릴 때면 그녀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랑을 얻지도 잃지도 못했던 아름다운 여인을...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by 오제이 | 2008/05/06 00:11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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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lshdci at 2008/05/08 22:03
그림은 본인께서 그리신 건가요? 글도 좋고 그림도 좋네요 ^^
Commented by 오제이 at 2008/05/12 18:30
고맙습니다. 그림은 웹상에서 공유된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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