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21일
짧은 이야기 47 - 꿈

깊은 물 속,
한 소녀가 춤을 추고 있다
두 팔과 두 다리를 흔들며
수초와 어울려 물결과 하나가 되어 춤을 춘다
물고기 한 마리 소녀 곁으로 다가간다
소녀의 커다란 눈과 흔들리는 눈동자와 마주친다
그녀는 춤을 춘 것이 아니었다
물의 파동을 이기지 못할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아름다운 몸짓으로 흔들던 그녀의 팔에는 손이 없었다
리듬을 실었던 두 다리 중 하나도 발목이 끊어진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소녀의 몸놀림은 점점 작고 고요해졌다
춤에 맞춘 음악이 교향곡에서 야상곡쯤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할 만큼.
소녀의 눈은 차츰 감긴다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 않은 지 오래다
몸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와 수초의 뿌리를 건드리며
수초보다 더 낮게 눕는다
소녀 주위로 먼지처럼 부유하는 물고기떼가 몰려온다
눈을 감은 소녀의 얼굴은 평화롭다
손을 잃고 팔을 잃고 다리를 잃었다
마침내 심장마저 잃은 소녀 얼굴의
두 눈이 사라진 자리에 큰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다
그 구멍으로 물고기들이 드나든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 콧구멍으로 입으로
작은 물고기가 드나들며 소녀에게서 배운 춤을 춘다
마침내 소녀를 지탱해주던 단단한 뼈만 남았을 때
깊은 바닷속은 다시 고요해진다
수초와 물고기와 공기마저 황홀하게 사로잡던
죽음의 향연은 침묵으로 바뀌어간다
미련이 많은 물고기 몇 마리만 소녀의 심장이 있던
자리를 오가며 소녀의 춤을 흉내낸다
어디선가 자장가를 닮은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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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5/21 15:04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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