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03일
짧은 이야기 49 - 핸드폰을 잃어버렸어요

이 시간에 웬 메일이냐고 놀라셨겠죠?
여태까지 헤매고 다니다 이제 돌아왔어요
실은 저녁 회식 끝나고 택시를 탔는데
거기다 핸드폰을 두고 내렸거든요
다행히 안전을 위해 택시 번호를 확인해두어서
운전사를 찾긴 찾았는데 벌써 누가 가져갔는지
뒷좌석에 핸드폰은 없었어요
어떡해~~
몇 번이나 어떡해를 반복하면서 쩔쩔매니까
운전사 아저씨가 할 수 없죠, 뭐 다시 사세요,
혀를 차며 뻔한 해답을 가르쳐주더군요
그게 아닌데 말이에요
내가 안타까워하는 건 핸드폰이 아니라
핸드폰에 매달려 있던 핸드폰 고리였어요
당신이 출장갔다가 사다준 빨간색 산호 물고기 장식 말이에요
똑같은 걸 살 수도 없을 뿐더러
물고기자리인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이라며 선물한
당신의 얼굴이 떠올라 눈물이 앞을 가리더군요
미안해요
아무래도 그 선물 받을 때 내가 했던 방정맞은 말 때문인가 봐요.
고맙다고 말하면서 이 물고기 죽을 때까지 간직할게요, 그랬잖아요
그 물고기는 지금쯤 어디에 가 있을까요?
그 핸드폰을 주운 사람이 설마 그걸 떼어버리진 않겠죠?
생각할수록 암담한 지경입니다
당신과 내가 찍은 사진과 셀카들,
당신이 보낸 달콤한 메시지들,
우리가 여행 갔을 때 함께 찍은 동영상,
우리가 함께 나눈 모든 이야기와 그림들이 다 들어있는데
그게 어딘가에서 패기처분된다고 생각하니
팔다리가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마음이 아파요
당신의 어떤 핀잔도 비난도 달게 받을게요
그리고 당분간은 핸드폰을 사지 않을 작정이에요
뭐랄까, 애도기간이랄까..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요
그래야 혹시라도, 만의 하나 그 전화기가 나를 찾아올지도 모르니까요
당분간은 공중전화나 집전화를 이용할게요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메일로 보내구요
이런 불편을 감수하는 것쯤은 내가 치러야할 벌이라고 생각해요
당신께는 매일 편지를 쓸게요
그리고 공중전화를 발견할 때마다 전화를 걸게요
요즘 공중전화가 얼마나 드물어졌는지는 몰라도
설마 우리의 교신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겠죠?
그리고 한 가지 쪼끔 좋은 건 잊고 있던 사실을 발견한 거예요
전화기를 잃어버리고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나 생각하는 동안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말들을 서로의 귀에다 속삭였는지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시간들을 공유했는지
당신은 또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나는 또 얼마나 당신을 사랑했었는지 속속들이 알게 되었어요
요즘 우리가 무심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편안히 주고받았던 일상에서조차
우리는 서로를 위하고 걱정하고 살펴주었더군요
잃어버린 핸드폰을 대신할 만큼은 아니지만
이거면 조금 면피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래도록 사랑하는 일이,
그보다 매 순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가르쳐준
잃어버린 핸드폰을 당분간은 기억할게요
내가 전화 자주 하지 못하더라도 눈감아 주세요
당신, 미안하고 고마워요
당신의 물고기... 자유로운 곳으로 갔을 거예요
이제 소중한 걸 놓아주었을 때의 마음 알 것 같아요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쓸쓸하지만 가벼운,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의 몸짓 같겠지요
안녕, 나의 물고기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 by | 2008/06/03 10:41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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