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15일
짧은 이야기 50 - 발

방바닥에 붉은 점이 어지러이 찍혀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부정형의 붉은 점은 핏자국이었다
내가 돌아다닌 곳의 행적을 고스란히 고발하는 피 묻은 발자국
화장실에서 부엌으로 부엌에서 내 방으로
다시 베란다로 그리고 현관으로...
소파에 앉아 발바닥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엄지발가락에 박힌 작은 유리조각이 까끌하게 손끝에 잡혔다
아픈 줄도 모르고 다친 줄도 모를 만큼 작긴 했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유리가 박힌 것도 모를 수가 있지
나의 둔감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그게 아니지
유리조각이 문제가 아니라
왜 유리조각이 발에 박혔으며
그 유리조각은 또 어디서 났느냐가 문제다
어제 실수로 깨뜨린 물컵이 사단이었다
분명 청소기로 싹싹 밀었는데
예상외로 먼곳까지 튄 조각 하나가 내 발에 걸려든 것이다
내 머릿속의 빠진 나사 하나도 이렇게 어딘가 숨어 있겠지
유리를 빼내고 발을 깨끗이 씻은 다음
로션을 골고루 바르고 발을 마사지 해주었다
발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말
너 거기 있었구나
잊고 있었다
미안하다
네게는 항상 일만 시키고
이렇게 다칠 때 말고는 신경도 안 썼구나
매끈하고 깨끗해진 발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발가락이 꼬물꼬물 움직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처럼 진지하다
나는 다른 움직임을 멈추고 발가락에 집중한다
그리고 발의 명령에 따른다
발은 아래로 향한다
소파에서 엉덩이를 들고 발로 방바닥을 딛고 일어섰다
발은 앞으로 간다
그리고 옆으로 몇 발자국 더 갔다가 뒤로 물러난다
느리게 조금 빠르게 더 빠르게 다시 느리게
나는 발과 함께 팔도 다른 부위도 같이 움직여 주었다
공기 중에 음악이 흐른다
내 숨소리와 발의 마찰음이다
그 소리에 맞춰 발은 아까보다 더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
그래 이게 진정 네가 원한 거였니?
가끔 네 소원을 들어주마
한달에 한번 일주일에 한번쯤은
다른 건 다 잊고 너와 함께 춤을 추어주마
발에서부터 전달된 열기가 온몸으로 번진다
내 몸은 뜨거워진다
손도 땀이 나면서 따뜻하다
배를 만져보았다
배도 따뜻하다
나는 두 발로 딛고 서서 팔을 높이 쳐든다
나무 한그루처럼 몸을 한껏 위로 뻗어본다
따뜻한 나무
발이 뿌리가 되어 단단히 땅에 박힌 나무
으으으으으으
즐거운 비명과 함께 발은 다시 빠르게 움직인다
아직은 춤을 멈출 때가 아니구나
그래 밤새 세상의 땅을 다 밟을 듯 춤을 추자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 by | 2008/06/15 21:25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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