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54 - 금반지







그는 부자다
그는 뭐든 많이 가진 남자다
돈도 많고 인정도 많고 학식도 많고
매력도 많고 또 나이도 많다
당연히 그의 주변에는 여자 또한 끊이지 않았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여자들이 사달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사주기 때문이다

그는 한 여자를 만났다
시장에서 떡집을 하는 얼굴이 동그랗고 키가 땅딸한 여자였다
낙원상가에서 잔뼈가 굵은 그녀를 사람들은 낙원댁이라고 불렀다
미인과는 거리가 먼 얼굴이지만 보조개만은 백만불짜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녀는 뭐든 적게 가진 여자다
돈도 별로 없고 인정머리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욕심도 없었다
나이도 많지 않다
많은 걸 굳이 찾자면 웃음과 눈물 정도다
당연히 사연 많은 인생을 살았다고 자타가 공인한다
가진 것도 없지만 남자에게 요구하는 것도 별로 없었다
그는 자꾸 물었다
"넌 뭘 갖고 싶으냐?
말만 해라. 내 뭐든 다 사주마"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자기는 별로 부족한 게 없다고 했다
그는 틈만 나면 물었고 그녀는 그만 됐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집을 사주랴? 아니면 자동차? 그것도 아니면 금송아지라도 사줄까?"
그녀는 계속해서 고개를 저었다.
"왜 있잖냐,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명품 가방 같은 거 갖고 싶지 않으냐?"
그녀는 한참을 곰곰 생각하더니 결심한 듯 대답했다
"그렇게 뭘 사주고 싶으면..."
"그래그래. 뭐든지 말해라. 내가 가진 게 돈밖에 없는 사람 아니냐."
"정 그러면 그 반지나 저 주세요."
그녀는 그의 손가락에 끼여 있는 금반지를 가리켰다
"두 개잖아요. 한 개는 나를 주면 되겠네."
그는 똑같은 모양의 서 돈쯤 되는 민무늬 순금반지를 양 손가락에 끼고 있었다
갑자기 남자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정색을 했다
"이건 안돼."
"왜 안돼요?"
"글쎄 안된다니까."
"그럼 관둬요. 난 그거 아님 딴 건 갖고 싶지 않아요."
그는 묵묵히 자신의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금방 포기하고 앞에 놓인 시루떡을 맛있게 먹었다
여자가 원하는 걸 줄 수 있는 남자가 세상에 많지 않다는 걸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다시는 그녀에게 무엇이 갖고 싶냐고 묻지 않았다.
그녀도 정표로 받고 싶은 반지 따윈 다시 탐내지 않았다.
영리한 사람이 그 광경을 보았더라면 충고했을 것이다.
"그깟것, 몇 푼이나 한다고. 똑같은 걸 사주면 될 거 아니에요."
그는 그녀가 원하는 게 그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아는 사람이었다

몇 달 후 그는 지병으로 죽었다
그에게는 몇 채의 집과 너른 땅이 있었다
자식들 사이에서는 그 재산을 놓고 재판이 벌어졌다
그가 유서에 재산의 분배에 관한 어떤 말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재산이 돌아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
그의 유서는 짧았다
"내 반지를 낙원댁에게 맡겨주시오.
한 개는 북에 있는 아들에게 또 한 개는 아내에게 전해달라고.
곧 통일이 될 거요.
그때까지만 맡아 달라고, 꼭 부탁한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전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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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이 | 2008/06/26 11:03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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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행복해 보였다. 그녀는 마치 그 반지를 자신이 돌려받기라도 한 듯 반짝이는 자신의 오른손을 그를 향해 힘껏 흔들었다. 그 꿈은 밝고 따뜻했다. 황금빛 꿈이었다. 짧은 이야기 54 - 금반지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 more

Commented by 아이 at 2008/06/26 11:56
;-; 마음이 찡해옵니다..
Commented by 오제이 at 2008/06/27 00:07
금반지에 여러 얼굴이 있죠?
통일이 빨리 왔으면...하하하
정말 기차타고 북한을 통과해서 유럽으로 가고 싶습니다.
Commented by SeedbitS at 2008/06/27 03:22
마지막에서 정말 찡해오는군요 ;ㅅ; 좋은 글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샛별 at 2008/06/27 08:24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저는 머리가 짧아서 잘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오제이 at 2008/06/27 08:42
읽는 사람이 느끼는 만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해진 답이 있나요 뭐. ㅋㅋ
Commented by DaL、 at 2008/06/27 16:01
짧은 글인데.. 읽고난후 계속 머리에 남네요; 쥔장님께서 쓰신글인가요;?
Commented at 2008/06/27 16:3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露彬 at 2008/06/27 16:45
찡하네요... 재미있는 글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오제이 at 2008/06/27 21:45
즐겁게 읽으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통일을 오매불망하시는 어떤 분을 만났는데
그때 떠오른 단상을 이야기로 만들어보았습니다
'삶의 무게'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하는 분이었습니다
저야 사실 통일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생각하는 터라
전 인생을 던져 통일을, 그리고 삶을 기원하는 사람에게
빚진 마음 이런 가난한 글로라도 갚아보려고...
Commented by 샤베트 at 2008/07/07 22:33
아...정말 찡하네요. 마지막 유언을 보기 전까진 어떤 종류의 이야기일까 궁금해하며 봤는데 어휴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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