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책로 4 - 이태원




인간에게는 모국어에 대한 욕망이 절대적이라고 한다. 이민 간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얘기가 한국말로 실컷 수다 한 번 떨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거다. 모국어가 영어로 mother tongue임을 봐도 그 말의 뿌리를 알 수 있다. 엄마의 혀처럼 모국어는 내 입에 착 붙는 말인 것이다. 모국어로 길게 설명하지 않으면, 또는 내가 익숙한 내 방식의 언어로 내 감정과 생각을 풀어내지 않으면 자신을 잘 표현했다고 느껴지지 않는 심정은 알고도 남는다. 이상형이 어떤 사람이냐고 누가 물으면 이런 농담을 하는 친구가 있다.

“같은 모국어를 쓰는 사람이면 되죠.”

그 말의 다른 버전은 “결혼은 같은 나라 사람이랑 하는 거야,”쯤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모국어나 같은 나라라는 말은 실제의 국적이나 국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공감대랄까, 사고방식이나 문화의 공통점이랄까, 하여튼 뭐든 잘 맞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 마디로 말이 통하는 사람.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라는 복잡다단한 동물을 모국어 하나로 묶어서 다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1990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실시된 뒤로 누구나 자유롭게 외국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동네 슈퍼 아저씨도, 목욕탕 아줌마도, 경비원 아저씨도, 내 친구도, 나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경제 사정이 허락하는 한 외국에 놀러 갈 수 있게 된 거다. 그 이후로 또는 그 이전에도 유학을 가거나 해외주재원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한국에 돌아오면 이상한 공황상태를 경험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한국에 적응하고 나면 (이게 무슨 호랑이 풀 뜯어먹는 소리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기 나라에 적응이라니. 하지만 그건 엄연히 존재하는 현상이다. 오죽하면 역문화충격-reverse cultural shock 이라는 말이 생겼겠는가) 슬슬 자기가 잠시 몸을 담았던 ‘그 나라’가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그 시기에는 거기서 보낸 시간과 장소, 생활과 추억에 대한 칭송이 줄을 잇는다. 그렇게도 지긋지긋해하던 일조차 몹시 그립다는 듯이 말한다. 국제전화로 울며불며 하소연하던 일은 까맣게 잊고 내가 언제 그랬냐는 얼굴이다.

“나 거기 있을 땐 주말에 공원에 나가 크리켓하면서 바비큐 해먹고 그랬잖냐.”

“공기는 또 얼마나 깨끗한지 셔츠를 사흘씩 입었다니까.”

“그 사람들 매너 좋은 건 두 말 해서 뭐 하겠냐? 어찌나 조근조근 속삭이는지 옆 테이블에 있는 사람한테도 목소리가 안 들려. 거기 비하면 여긴 완전 도때기시장이야. 우리도 본받을 건 좀 본받아야 돼.”

사소한 것까지 찾아내 칭찬하느라 입에 침이 마른다. 자기 귀에조차 공허하게 들리는 그런 말들을 쉬지 않고 뱉어낸다. 그 이면에는 간단히 한두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단순히 외국생활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치부한다면 그 사람은 인생에 대해 반만 아는 사람이다.

인간한테는 모국어에 대한 갈망 못지않게 한 번 익힌 외국어에 대한 갈망 또한 크다는 걸 경험해본 사람은 잘 안다. 일종의 지적인 허영심이랄 수 있는데 외국어로 소통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자기 인생의 한 시절을 증거하는 그 언어로 그때처럼 신나게 떠들고 싶은 욕망은 모국어로 수다 떨고 싶은 욕망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요즘 청담동이나 강남역 주변의 술집에서 외국인 바텐더가 인기를 끄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근래 들어 어학연수다 뭐다 해서 외국물을 먹고 온 사람이 좀 많은가. 수시로 제 2의 모국어로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릴 것이다.

속물근성이라도 몰아붙이지 말자. 언어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결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한 사람 안에 여러 얼굴이 있듯이 밖으로 드러내고 싶은 얼굴 또한 여러 개다. 서울 시내에 태국, 인도, 그리스, 이태리, 프랑스, 파키스탄, 베트남 등의 외국 음식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까닭도 거기서 멀지 않다. 매일 밥만 먹고 김치, 불고기, 된장찌개만 먹어서는 충족되지 않는 우리들의 간사한 혀. 그 혀는 말 뿐만 아니라 음식에 대해서도 다양한 요구를 해댄다. 이쯤이면 이태원의 존재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것이다.

얼마 전에 친구가 해방촌에 작업실을 얻었다. 모두들 뜬금없다는 반응이었다. 살던 집에서 가까운 동네도 아니고 강남역이나 종로나 광화문처럼 교통이 편한 곳도 아닌, 해방촌?

“이름 한번 되게 촌스럽네.”

“뭘 그렇게 해방하고 싶어서?”

반응도 각각이었다.

“전위! 그것은 항상 변두리에 있다. 그런 말도 모르냐? 나름 매력 있어. 요새 골목이 있는 동네가 별로 없잖아.”

“골목?”

“골목을 지나서 굽이굽이 집 찾아가는 맛이 쏠쏠하거든.”

“너 벌써 늙었냐? 웬 골목타령이야?”

“집은 버스에서 내려 삼 분 안에 나오는 데 살아야 돼. 뭐니 뭐니 해도 도시에서는 안전이 최고 아니냐, 무섭게 웬 골목?”

꽤나 인생에 통달한 듯한 이런 반응도 나왔다.

“재밌어. 동네에서 이 일 저일 많이 일어나니까 딴 생각할 틈이 없더라. 애들이랑 할머니들이랑 골목에 나와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얘기하고 노는 게 어쩜 그렇게 똑같은지.”

아무튼 그 친구의 골목타령은 끝도 없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아니다. 그녀가 어떤 심리상태에서 골목이 발달한 해방촌으로 거처를 옮겼는지 모른다면 거짓말이다. 아마도, 분명, 필시 외로워서일 것이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아파트나 빌라 골목의 스산함보다는 오밀조밀 모여 사는 주택가를 지나는 맛이 훨씬 정감 있으리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녀는 자신이 시골 변두리 출신임을 그렇게 드러냈다. 그런 식의 얇고 가벼운 정서적 유대감이라도 필요했던 거다. 정체성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섭다. 도시 출신과 시골 출신.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하나 있다. 그녀가 돌아가고 싶어 하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삶이란 게 그리 쉽게 복원되지는 않겠지만 해방촌을 정거장 삼아 그녀가 서울에 살기 적합한 인물로 진화하길 바라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남산에서 내려와 해방촌의 다닥다닥 붙은 주택가를 통과해 이태원으로 진입하는 게 내가 좋아하는 루트다. 가끔은 삼각지 방향에서 출발해 전쟁박물관을 거쳐 녹사평역까지 이어지는 거리를 걸어서 가기도 한다. 내가 이태원을 즐기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때와 기분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리 변주된다. 이를테면 해가 쨍하게 나거나 기분이 가볍고 산뜻한 날은 해방촌 끝자락에 있는 <TACO>에 들러 타코나 카사디아를 안주 삼아 끼니 삼아 가볍게 맥주 한 잔으로 산책을 시작한다. 작고 좁은 가게지만 이층과 야외 파라솔이 있어서 멕시코 어느 시골 동네 타코집에 온 것 같다. 인테리어도 솜씨 있는 주인아저씨가 페인트 사다가 땀 뻘뻘 흘리면서 칠한 게 분명한 아마추어, 아니 홈메이드 풍이다.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의 그림을 연상하게 하는 강렬하고 단순한 풍광이 담긴 몇 개의 액자와 키가 큰 선인장 화분이 있는 이층이 내 단골 좌석이다. 원래는 옥상이었던 공간을 장사하느라 개조해서 테이블 몇 개를 더 갖다놓았다. 흡연석이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공간이다. 임시로 막아둔 투명한 피브이시 천장은 비가 올라치면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가 한여름 밤에 개구리 우는 소리는 저리 가라다.

이곳에 오면 그 이국적인 분위기 덕분에 어디 열대지방으로 잠깐 놀러온 기분이 든다. 정말 확 멕시코로 여행을 가버려!, 하는 충동에 휩싸인 적도 몇 번 있다. 손님의 절반이 외국인인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고수와 칠리, 양파 냄새가 은은히 밴 가게에서 낯선 곳에 대한 상상을 잠시 해본다. 정확히 말하면 낯선 곳을 헤매는 나 자신을 상상하는 것이겠지.

<TACO>를 지나 본격적인 이태원 거리로 진입하면 눈에 들어오는 다른 피부색의 인종보다 귀에 들어와 박히는 외국어가 먼저 감각을 일깨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동남아인이 부쩍 많아져서 어느 나라 말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말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 사람들과 그들의 목소리가 이 산책길의 동반자다. 최대한 느리게 최대한 해찰을 많이 하면서 걷는 게 이 거리 산책의 참맛이다. 특이하고 개성 있는 옷차림을 원하는 덩치 큰 사람이 찾으면 딱 좋은 옷가게가 수두룩하다. 특대형 옷이 밖에 걸려 있는 라지사이즈 전문 옷가게에서는 나와 같은 인간임에도 거의 두 배나 큰 사람이 무지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나의 관심분야는 옷보다는 술집이나 음식점이다. 몇몇 사람한테 물어본 결과 이태원의 진수는 역시 노천카페였다. 더러는 다트나 포켓볼을 할 수 있는 펍을 추천하기도 했다. 썩 마음에 드는 곳이 나타날 때까지 우선은 그냥 기웃거리기만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내가 두 번 이상 가본 곳은 재즈의 명소인 <올댓재즈>와 <게코스 테라스>라는 펍이다. 재즈 공연을 감상하고 싶으면 전자가 딱이고 왁자한 술집에서 편하게 술 마시고 싶으면 후자를 선택하면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재즈 뮤지션들의 상당수가 올댓재즈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수준 높은 공연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또 골목 얘기를 하게 되는데 이태원의 골목길은 아까의 친구가 말한 그런 느낌은 없다. 옹기종기 모인 아이나 노인이 아니라 클림트의 ‘키스’ 그림에서처럼 두 개의 몸이 하나로 뒤엉킨 연인을 위한, 그러니까 키스하기에 좋은 골목길이다. 늘어선 가게에서 비추는 환한 불빛에도 아랑곳없이 키스에 열중한 모습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곳이 또한 이태원이다. 연인이라면 한 번 몰래 숨어들어 열정적인 키스를 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골목이 건재한 곳. 서로 어깨를 끌어안고 볼을 부비며,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다. 그들이 온몸으로 뿜어내는 사랑 또는 욕망이 조금은 구경꾼들에게도 전염되는 느낌이다.

인간이란 얼마나 이중적인가. 또 얼마나 들쭉날쭉에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가. 잘 익은 김장김치의 시큼한 맛에 입맛 다시다가도 갓 버무린 겉절이의 젓갈냄새를 맡으면 얼른 젓가락을 들이민다. 자신의 존재를 영원히 고착시키기 위해 안전한 국적을 얻고 싶어 하는 욕구만큼 강한 것이 어디론가 국적 없이 근거 없이 떠돌고 싶은 유목민의 욕구다. 일상은 대단히 힘이 센 놈이라 우리가 그리 하도록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그렇더라도 출구가 필요한 견고한 일상에서 우리는 갖가지 방책으로 그 두 가지 욕구를 달래며 살아간다. 그 중 하나가 이태원 같은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금요일 밤의 홍대 거리가 붐비는 이유 또한 비슷하다. 클럽데이라고 이름 붙여 클럽에서 밤새 술 마시며 춤추며 자유를 구가하는 사람들의 마음 저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나라에 사는 수많은 외국 청춘남녀들이 모여들어 이국에서의 자유를 만끽한다. 각각 다른 이유로 그들의 자유는 서로 충돌하지 않고 끌어안는다. 자신의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잠깐의 차선책이라고 하면 너무 단순화해서 말하는 것일까. 자유만이 자유를 용서하고 자유만이 자유를 허락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그들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홍대에서 이태원 거리에서 자기가 발 디딘 일상을 잠시나마 벗어나는 모험을 감행한다. 모험의 끝에서 기다리는 것이 설사 허탈함뿐일지라도 그 시도의 빛이 바래지는 않을 것이다. 술을 마시든, 쇼핑을 하든, 이국의 음식을 먹든 한 발짝만 비껴나도 우리 눈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들어온다는 것. 이태원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준다.

모국어와 이국어가 둘 다 우리의 혀를 행복하게 하듯, 또 그 혀가 김치와 타코의 맛을 동시에 반기듯, 조금은 다른 자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건강한 것이다. 우리는 그리 멀리 가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가 쌓아올린 인생은 고무줄처럼 유연해서 우리를 저만큼 잡아당겼다가도 손을 놓으면 바로 제자리에 돌려놓을 것이므로.

그리스 음식점, 인도 음식점, 해밀턴 호텔을 지나 보광동쪽에 있는 회교 성전을 방문하는 것도 어떤 다른 날을 경험해보는 괜찮은 선택이다. 이슬람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그 성전의 경건함은 한 번 느껴볼 만하다. 하루에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머리가 땅에 닿도록 고개 숙여 기도하는 그들의 신실한 마음을 공유해보자. 해 뜰 무렵, 정오, 오후 4시, 해질 무렵, 잠들기 전. 얼마나 정교한 하루의 분할인가. 무언가를, 누군가를 이토록 간절히 규칙적으로 발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 세상은 낙관적이어도 좋은 곳일 것이다.


이태원은 곧 개발되어 동네마다 블록을 지정해 프랑스 거리, 이태리 거리, 러시아 거리 등 좀 더 이국적이고 역동적인 분위기로 바꿀 계획이란다. 그러면 혹시 골목길은 싹 없어지고 모든 게 번듯하고 훤해지기만 하는 건 아닌지. 손바닥 하나 가릴 곳 없이 다 광장으로 내모는 서울의 최근 모습에 가슴이 탁 트이기는커녕 답답해지는 건 무슨 까닭일까. <끝>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by 오제이 | 2008/07/26 11:00 | 나의 산책로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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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7/27 11:0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7/27 11:5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ikbloger at 2008/07/27 20:46
아하. 올댓재즈. 한때 안방처럼 드나들던 곳이군요. 몇년 안간 사이에 많이 변한듯 합니다. 분위기가 예전같지 않다고들 하더군요. 몇년 전부터는 발렌타인 데이, 크리스마스 이브 등 소위 '날'에는 술을 시키지 않아도 2만 5천원짜리 안주를 강매한다는 소리도 들리구요.
Commented by 오제이 at 2008/07/27 21:02
그런 소문 저도 들었지만 그건 어떤 풍토 같아요.
무슨 날이면 한 몫 잡아야 한다는..
음악은 아직까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느껴지더군요.
음악을 사랑하는 것만큼 음악을 사랑해서 찾아오는 사람도
아껴주는 미덕을 가진 재즈바, 저도 기대합니다~~~
Commented by 구름신선 at 2008/07/27 21:49
이태원 토박이랍니다^^
이글루 메인에서 보고 냅다 들어왔죠^^
날씨좋으면 이태원에서 놀다가 버스를 타고 남산을 올라가시는 것도 괜찮아요^^
Commented by 혈견화 at 2008/07/28 01:26
자기 귀에조차 공허하게 들리는!
Commented by catail at 2008/07/28 18:23
저도 이태원 살아요.
여기의 분위기는 어디와도 다르지요.
Commented by knulp at 2008/08/28 00:19
아마추어와 홈메이드.
아마추어라 하면 약간 '폄하'하는 듯 한데, '홈 메이드'라고 하면 상당히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죠. 홈 메이드 애플 쨈..
Commented by knulp at 2008/08/28 01:02
그리고 외국어-모국어 이야기 공감합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저는 여지껏 살아 오면서 제 삶의 70%는 우리나라에서, 30%는 영어권에서 보냈습니다. 지금은 사는 곳과 하는 일 때문에 무조건 영어로 읽고 말하고 쓰지만, 여전히 취미로 읽는 글이나 쓰는 글은 우리말, 국어를 선호하고 반면에 취미로 보거나 듣는 TV나 영화는 영어를 선호하는 잡탕식 언어섭취 때문에 어느쪽을 가더라도 다른 쪽 문화-언어가 그리워 질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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