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64 - 55와 66


A와 B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짝꿍이었던 둘은 공통점도 많고 다른 점도 많았다
농구를 좋아하고 치즈버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호러무비를 싫어하는 점은 똑같았고,
A가 수학을 잘하고 운동이 특기인 반면
B는 영어와 국어를 잘했고 그림그리기가 특기인 점은 달랐다

짝꿍이었던 만큼 둘은 키도 비슷하고 체격도 비슷했다
그런데 바로 그 체격이 문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한 이후
그들은 더 이상 티셔츠나 청바지를 외출복으로 입지 않았다
정장을 주로 입었고 주말에도 블라우스나 스웨터에 치마를 입는 일이 많았다
문제는 바로 거기 있었다
둘 다 사이즈가 평균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55를 입으면 꽉 끼고 66을 입으면 헐렁했다
사이즈는 비슷했지만 체형은 정반대였다
A가 가슴이 풍만하고 하체는 빈약한 것에 비해
B는 상체는 말랐고 풍만한 엉덩이에 튼실한 다리를 가졌다
둘은 비슷한 체형임에도 A는 55를 주로 입었다
자기의 주무기인 풍만한 가슴을 돋보이게 타이트한 옷을 선호했다
B는 불편한 건 조금도 참지 못하는 까탈스러운 성격인지라 항상 66을 샀다.
몸에서 조금 떨어진 헐렁한 옷을 선호했다

얼마 전 둘은 동시에 애인이 생겼다
남자를 고르는 취향도 서로 완전히 달라서
그 남자들이 각자에게 요구하는 바도 딴판이었다
A의 남자친구는 그녀가 너무 꽉 끼는 옷을 입어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을 싫어했다
함께 옷을 사러 가면 언제나 약간 여유 있는 66 사이즈를 사라고 권했다
A 역시 선물 받는 입장에서 고집을 부릴 수 없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B의 남자친구는 그녀의 옷차림이 너무 보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딱 달라붙는 옷을 입어서 그녀의 매력 포인트인 풍만한 엉덩이를 강조하길 바랬다
B가 그건 좀 오버 아니냐고 살짝 뒤로 뺐지만 남자친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55를 사라고 다그쳤다
B 역시 애인의 뜻을 따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둘은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되었다
A는 새로이 알게 된 헐렁한 옷의 편안함을 칭찬했다가
또 어떤 날은 이런 무신경한 옷을 내가 입다니 하며 한탄하기도 했다
B 또한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어서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끌 때면 미소를 짓다가도
가끔은 움직일 때마다 숨을 몰아쉬어야하는 불편함을 왜 자기가
감수해야하는지 도무지 알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둘은 만나면 서로를 사이즈로 불렀다
A는 B를 '야, 55'라고 불렀고
B는 A를 '야, 66'이라고 불렀다
그 호칭에는 미묘한 빈정거림과 야유와 비탄이 뒤섞여 있었다
한편 안심과 자랑과 행복의 기미도 엿보였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의 사이즈를 잊었을 것이다
다만 자신을 둘러싸고 자신을 지배하는 이 이상한 헝겊의 존재를
문득 떠올리면서 사랑하는 남자를 생각하다
그리고는 차츰 길들여져가는 자신에게 생각이 멈추면
암담하거나 희망적인 미래를 상상해볼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그들의 사이즈가 앞으로 55에 정착할지 66에 정착할지...
그들조차 그것이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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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이 | 2008/08/17 22:24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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