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65 - 포옹



문득 내 몸에 손이 있고 배가 있고 뺨이 있었음을 깨닫는 날이 있다
거기 포진한 수많은 감각기관이 자나깨나 접촉과 자극을 기다린다는 것도.
적잖이 여자 때문에 속을 끓이고 술깨나 마셨지만 오늘처럼 생생히 내 몸의 존재를 느낀 적이 있었던가
다 그녀 덕분이다
그녀는 나를 자기 회사 옥상으로 데려가 자판기 커피를 뽑아주고 벤치에 앉았다
여직원들이 어떻게 옥상에 작은 정원을 만들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준 뒤
벤치에서 일어나 저 아래 지상의 풍경을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는 내게로 다가왔다

그녀가 손을 내밀어 내 손에 들고 있던 빈 종이컵을 가져다
자기 것을 포갠 뒤 옆에 있는 휴지통에 버렸다
그리고 팔을 쭉 뻗어서 멋대가리없이 아래로 늘어져 있던 내 손을 잡았다
그녀는 내 손을 꼭 쥐더니 내게 조금 더 가까이 왔다
내가 나머지 한 손을 어째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동안
그녀가 내 허리에 오른손을 얹었다
나는 용기를 얹어 그녀의 왼쪽 허리를 내게로 바짝 끌어당겼다
그녀가 몸을 기울여 내 어깨 위에 턱을 올려놓았다
목덜미에 그녀의 콧김이 느껴졌다
그녀는 두 팔을 뻗어 내 등을 감쌌다
내 등에 기찻길 같은 두 개의 줄이 아래에서 위로 순식간에 뻗어갔다
그 줄을 타고 올라온 전류가 내 얼굴을 달궜고 난 그 얼굴을 그녀의 뺨에 문질렀다
그녀는 뺨을 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심장에서 쿵쿵 소리가 들렸다

내 입술이 차가웠다 아니 뜨거웠다
그녀의 차가운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고
그녀의 뜨거운 혀가 내 입술을 문질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더 세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녀와 나의 입술과 가슴과 배와 성기와 허벅지와 발끝이 서로 포개지거나 부딪혔다
그러자 우리 몸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낮고 끈적끈적한 호흡은 조금 높은 한숨과 신음으로 바뀌었고
마침내 휘파람 소리 같은 가벼운 숨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 품안에 들어온 그녀의 몸은 생각보다 작았다
그리고 방금 구운 카스텔라처럼 뜨겁고 부드러웠다
나는 그 몸을 꽉 쥐어 뭉개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순간 그녀가 감았던 눈을 떴다
눈동자가 붉다
그녀는 조금 떨고 있었다
나는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고 문득 눈물이 나려고 했다

누군가 나를 이렇게 오래 따뜻하게 안아준 적은 초등학교 이후 처음이었다
학교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 울며 하소연하는 나를 엄마는 꼭 안고 등을 두들겨 주었다
나는 비로소 안심이 되어 소파에 기대 있다가 긴 낮잠을 잤었다
그녀의 등을 내가 두들겨 주었다
소파에서 내게 기대 긴 낮잠을 자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등을 두들겨 주니까 그녀는 정말 안심이 된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랑 자고 싶은가요?"
그녀 얼굴이 조금 더 붉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그녀가 내 뺨에 두 손을 갖다대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남자랑 한번도 자본 적이 없어서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녀는 고맙다며 약국에 갔다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멍하니 서 있었다
  "콘돔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요."
그녀는 또 미안하다고 했다
남자와 자본 적은 없지만 성교육은 잘 받은 모양이었다
  "아, 네."
나는 가방속에서 편의점에서 산 베네통 콘돔 박스를 꺼내 보여주었다
  "참, 예쁘네요."
그녀는 머리핀을 고르는 얼굴로 말했다
나는 옥상 아래의 지상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서투른 그녀가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좋을 장소가 어딜까 찾았다
토요일 오후의 거리는 뭔가를 찾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땅 위에는 붉고 파랗고 검은 간판 천지였다
갈 곳은 많았지만 고르기는 힘들었다
비둘기들이 우리 사이를 오가며 구구구 땅 위를 쪼아댔다
간간이 서로의 등에 머리와 부리를 부딪히며 자기 존재를 알렸다
아무 데서나 사랑을 할 수 있어서 너네들은 좋겠다
나는 그녀 손을 잡고 옥상공원을 가로지르며 진심으로 비둘기들을 부러워했다
내 손에 잡힌 그녀의 손은 아직도 떨고 있었다

나는 오늘 새로이 알게 된 게 또 있다
어떤 사무실은 옥상에 정원이 있다는 것과
그 정원에서는 상상을 뒤엎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과
잔돈을 바꿀 때는 앞으로도 편의점에 들어가
가장 예쁜 포장의 콘돔을 사두어야겠다는 굳은 결심 같은 것들...

 



by 오제이 | 2008/08/22 23:10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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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8/23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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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8/2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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