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70 - 포옹 6



그녀는 내가 죽이고 싶다는 감정을 느낀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녀 이후로는 적지 않게 살의가 나를 충동질하는 일이 생겼다

그녀가 내게 주문이라도 걸어놓은 것처럼...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그녀도 나를 죽이고 싶어했다

실제로 깨진 유리컵을 집어 내 목덜미를 겨냥한 적도 있었고

무지막지하게 큰 트레일러가 지나갈 때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네가 저 아래 깔리면 어떻게 될까? 토마토처럼 으깨질까? 그런 뜻이었으리라


사람이 사람을 향해 살의를 느낀다는 건 무얼까

너를 떠나고 싶다가 아니라

너를 없애고 싶다는 말의 의미를 나는 서른이 넘어서 알게 되었다

너를 안 보는 것뿐만 아니라 네가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불쾌하다는 것

너를 위해서는 그 무해한 불쾌함조차 참고 싶지 않다는 것

그래서 감옥에 갈 것을 불사하고라도 너를 제거하고 싶다는 압도적인 폭력성

신기하게도 우리는 서로의 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아주 잘 읽어냈다

미워, 꺼져 버려, 더러워.....

긍정적인 감정을 더 잘 읽는 커플이 되지 못한 걸 한탄할 여유도 없을 만큼

우리는 서로를 증오하고 경멸하는 데 골몰했다


그녀는 자주 내게 함께 잘 것을 요구했다

유혹이 아니라 강요였다

거칠게 달려드는 기세에 나는 풍뎅이처럼 납작 엎드렸다
밀쳐낼 수도 반길 수도 없이 그저 누워 윙윙 거릴 뿐이었다
겁많고 비겁한 나는 후한이 두려워서 거절의 말을 입에 담지 못했다

나의 뿌리를 쥐고 흔들다 뽑고야 말 것 같은그녀의 욕망을 달래고 나면

나는 정말 그녀가 원하지 않았더라도

내 스스로 내 뿌리를 뽑아내고 싶을 만큼 내 몸이 혐오스러웠다

그것이 바로 그녀가 원하는 것이었다

내가 나를 경멸하는 것!

나는 끈덕지게 내 몸을 일으켜세우고 그녀의 바램으로부터 멀어졌다


어떻게 해서 내가 그녀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동안 그녀에게서 당했던 시간의 길이나 고통의 강도를 생각하면

싱거울 정도로 단순한 방식이었다

나는 일년치 연봉을 선불로 준다는 조건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나는 그 돈으로 집을 샀다

독일 지사에 나가야 한다며 그 집을 그녀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안 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

나는 그게 스카우트 조건이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더 잘 알 것이다

그만한 조건의 스카우트 제안이 아무 때나 들어오는 게 아님을...

잘 하면 그곳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니 독일어나 잘 배워두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은 한국을 떠나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결론은?

간단하다

그녀는 그 집을 가지고 이곳에 살면 되고

나는 ‘일단’ 독일로 떠나면 되는 것이다

아주 깔끔한 계산법이다

누가 손해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뭐가 어떻다 해도 살인자가 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게 나의 계산법이었다

나는 정말 한 발만 더 내디디면 살인을 저지를 위기였다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일 년 반 뒤 독일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승무원이 내민 한국신문의 한글이 반가워 받자마자 광고까지 꼼꼼히 읽었다

거기 그녀가 있었다

고국을 방문한 입양인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는 기사 위에

그녀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실려 있었다

그 웃음은 무엇보다 진실해 보였고 그 웃음도 그 일도 그녀에게 무척 잘 어울렸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나는 그녀의 상반신이 나온 사진을 찢어내서 지갑 속에 끼워넣었다


그 후 지금까지 삼 년 동안 나는 내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때마다

그 사진을 꺼내서 보곤 했다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은 경우는 그 사진을 통해서뿐이다

그 사진만이 내게 그녀의 진짜 얼굴을 보여준다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빼앗았는지
그녀가 나로 인해 무엇을 잃었었는지 가르쳐준다

그 사진은 마술처럼 내게서 살의를 빼앗아갔다

요 몇 달 동안은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았다

종이에 달라붙은 살의!

그 누가 무서워하겠는가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by 오제이 | 2008/08/30 01:12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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