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06일
짧은 이야기 84 - 슬픔의 얼굴

사람을 잘 기억하는 나는 누군가의 얼굴을 잊어버리는 일이 거의 없다. 십 년 전에 만났던 사람조차 심지어 세세한 버릇까지 기억한다. 이름이나 나이를 기억하는 건 기본이고. 존재를 기억하는 일은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눈으로 보는 순간 마음에 들어와 박히기만 하면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데서 끝나고 마음에 들어오지 않으면 매일 만나는 사람이라 해도 존재감이 없는 것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감정에도 얼굴이 있다. 분노의 얼굴, 좌절의 얼굴, 사랑의 얼굴, 슬픔의 얼굴. 모두 또렷또렷 기억한다. 한 시절 나를 지배했던 것들이니. 하지만 최근에 나는 하나의 얼굴을 잊었다. 슬픔의 얼굴. 슬픔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더라. 나는 너를 알아볼 수가 없다.
슬픔을 느낄 수가 없다. 내 심장은 너무 메말랐거나 너무 단단해졌다. 이제는 나도 눈물을, 눈물도 나를 반기지 않는다. 이따금 찾아오는 때조차 부적절한 곳에서 부적절한 때이다. 오로지 슬픔만을 위해서 슬퍼할 줄 알던 심장은 이제 내 것이 아니다. 고통스러워서 외로워서 혹은 아름다워서 행복해서 슬퍼할 줄 아는 것. 그 슬픔의 동행은 삶에 꽤 유용하기도 했다. 오직 슬프다는 이유로 오래 울고 나면 마음은 맑게 닦은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자신을 드러냈다. 네가 그런 모습이었구나, 그 얼굴로 나를 오래 바라보고 있었구나, 나는 마음을 알아보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세상도 나도 너도 모든 것이 제 모습을 찾아갔다.
한때 나는 ‘순정한 슬픔’에 대해 떠든 적이 있었다. 종종 빚쟁이처럼 찾아와서 내 일상의 자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슬픔의 정체에 대해 꽤 진지하게 얘기했다. 친구는 그것을 ‘우울’쯤의 뜻으로 알아들었다. 그 둘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항변했었다. 슬픔에는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고 요구도 없다. 뭔가 해결해주어야 벗어날 수 있는 우울상태와는 유전자 자체가 다른 것이다. 슬픔은 단지 슬픔의 얼굴로 찾아와 잠시 머물다 소심한 손님처럼 흔적을 지우고 조용히 떠날 뿐이다. 방을 어지르지도 않고 그릇을 깨지도 않고 잠깐 마음의 한자리에 머리를 누이고 쉬다 갈 뿐이다. 약간의 후유증을 남기기도 하지만 심각한 것은 아니다. 그저 몇 번 부산떨며 차를 마시거나 대청소를 하고 나면 없어질 것들이다. 먼데 사는 오랜 친구 같은 슬픔을 문밖에서 박대하지 말자. 나의 일상에 묵은 때가 얹히는 걸 조금은 늦춰주는 고마운 친구. 나는 언제 다시 너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까.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 by | 2008/10/06 07:42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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