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책로 9 - 공항




우리의 머릿속도 양파처럼 하나씩 차근차근 열린다. 어떤 자극이 오느냐에 따라서 어떤 뇌 부위가 열릴지 알 수 없다. 늘 개척되지 않은 부분이 자극 받아서 낯설지만 흥미로운 느낌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여행을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끝없이 새로운 자극에 자신을 노출하는 게 아닐는지. 그런 의미에서 공항이라는 장소는 의미심장하다. 가는 사람과 남는 사람. 오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이 공존하는 곳.

우리는 떠나는 자를 질투한다. 떠날 수 있는 용기와 기회와 결단, 마침내 그날. 그 모든 것의 복잡한 행로를 단번에 끊어냈거나, 오래 다 견뎌내고 이루었거나, 떠나는 자의 표정은 득의양양하다. 그것이 일시적이든 조금 더 항구적이든. 공항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그것이다. 나는 떠날 수 있는 사람이야, 라는 자아도취의 표정. 그래 일단 떠나 봐라, 얘기는 나중에 하고. 그런 류의 심술.

공항에서 친구를 배웅하고 오는 길은 정말 기분 축축하다. 아무리 성공해서 잘 사는 친구라 걱정할 것 없다고 맘먹어도 왜 그리 발걸음이 무겁고 안절부절못하는지 모르겠다. 그 친구의 영혼은 이곳에 남으려 하는데 몸만 떠나는 것 같은 애달픔에 마음이 미어진다. 아쉬움이란 과거의 일에 대한 감정이니 현재에 결코 상쇄되는 게 아님을 알지만 못 해준 일들만 기억난다. 어쩌다 우리는 다시 만났다가 별 얘기도 나누지 못하고 또 헤어지게 되었나. 그냥 인생이 뜬구름처럼 하염없다 싶어 하늘에 오락가락하는 구름만 쳐다본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열다섯 살 때를 생각한다.

나는 그녀의 도도하고 딱 부러지는 성격을 좋아했고, 그녀는 나의 엉뚱한 상상력과 다감한 성격을 좋아했다. 그리고 둘 다 좀 노는 축에 속했다. 말하자면 잡기에 능한 편이었다. 노래도 좋아하고 놀러 다니거나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무전여행이나 세계일주에서부터 돈 모아서 빨리 집에서 독립하자는 얘기까지 우리는 꿈이 참 많았다.

우리는 집이 다섯 정거장쯤 떨어져 있어서 자주 만날 수 없는 여름방학을 원망했다. 걷기는 멀고 버스를 타자니 돈이 없었다. 그해의 여름방학은 무척이나 길었다. 참다못한 나는 친구의 집을 찾아 나섰다. 두어 번 들른 적이 있었지만 낯선 동네인데다 친구를 따라서 무턱대고 간 길이라 제대로 집을 찾을지 의문이었다. 걱정을 한 아름 머리에 이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빈손이 민망해서 커다란 수박을 한 통 샀다. 땡볕은 내리쬐고, 수박은 팔이 빠지게 무겁고, 집들은 다 그 집이 그 집 같았다. 목도 마르고 다리고 아프고 더워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간신히 친구 집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기진상태였다. 그런데 아뿔싸, 친구가 집에 없었다. 식구들이 죄다 어디 갔는지 집이 텅 비어 있었다. 그 집은 항상 대문을 활짝 열려 놓았다. 온 동네 사람이 드나들도록 개방했다.

마당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마루에 앉아서 한참을 기다려도 친구는 오지 않았다. 매미는 울어대고 파리는 왔다갔다 정신없고 몸은 노곤했다. 벽에 잠깐 기대앉는다는 게 깜빡 잠이 들었다. 무리가 아니지. 얼마나 피곤했겠는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서 눈을 떠보니 친구가 돌아와 있었다. 그 애의 놀라고도 반가운 얼굴을 보자 잠이 확 깼다.

“얘 좀 봐, 남의 집에 들어와 잘도 자네.”

옆에서 친구 엄마도 놀란 소리를 했다. 친구 엄마는 친구랑 얼굴이 무척 많이 닮았다.

“이 무거운 수박을 혼자 들고 왔니?”

친구 엄마는 혀를 찼다. 이왕 고생해서 사온 거 맛있게 먹자. 친구더러는 나랑 얘기나 나누라면서 친구 엄마가 부리나케 동네 슈퍼로 달려가 얼음을 사왔다. 아닌 게 아니라 햇볕에 달궈질 대로 달궈진 수박 껍질은 익은 것처럼 뜨거웠다. 전화도 냉장고도 없는 친구 집에서 얼음을 얻는 방법은 동네슈퍼에 직접 가서 사오는 것이었다. 그때 먹은 수박화채 맛은 이 세상 것이 아니었다. 천상의 맛이었다.

저녁밥까지 친구 집에서 얻어먹고 친구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에 들어서자 엄마의 고함소리가 귀를 찢었다. 집에서는 내가 없어졌다고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잠깐 나갔다온다고 나간 애가 밤이 한참 깊었는데도 안 들어왔으니. 애초엔 나도 오래 지체할 생각이 없었다.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버린 줄 몰랐다. 그 친구가 왜 그렇게 보고 싶고 할 말은 왜 또 그렇게 많은지 해도 해도 못 다한 얘기가 남아 있었다.

몇 년 만에 간신히 이루어진 이번의 만남도 그때처럼 서로 속을 툭 터놓았던가, 생각하니 새삼 회한이 밀려왔다. 우리는 이미 그런 시기를 지나버린 걸까.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무작정 친구집을 찾아가지도, 아무 얘기나 제가 나오고 싶은 대로 나오게 내버려두지도 않는 나이가 된 걸까.

비상과 단절. 하늘을 난다는 것,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 떠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이루어진 곳이 공항이다. 인간은 날고 싶은 환상을 영원히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일상이라는 괴물에게 발목을 잡힌 생활인으로서 꿈꿀 수 있는 최소한의 퇴행이다. 현실이 지긋지긋하지만 떠날 수는 없을 때 공항에 간다. 그곳의 메마른 판타지에게 박수를 보내기 위해서.

공항이 인천으로 이사를 간 뒤로는 외국에 나가거나 나갔다가 돌아오는 친구를 보러가는 일이 많이 줄었다. 멀어서 왔다 갔다 하다 보면 하루를 다 써야한다. 외국에 나가는 일이 새로울 게 없을 만큼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인지라 촌스럽게 무슨 배웅이냐며 핑계 김에 안 나간다. 상대도 아예 기대를 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많이 편해졌다. 하지만 나처럼 심심하면 공항에 나가서 여행객들 구경하는 게 취미인 사람한테는 그 먼 거리가 재앙이다. 인천공항까지 가는 시간과 돈이 몇 배로 들어가니 말이다. 서울의 서쪽에 살아서 김포공항은 삼십분 안에 접근 가능한 나의 영역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매번 그럴 수는 없지만 어쨌든 외국 나가거나 들어오는 친구 있으면 모든 비용과 무리수를 무릅쓰고 인천까지 간다. 친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다.

과정이야 번거로워졌지만 공항이 주는 환상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생활과 괴리된 그 비까번쩍한 공항 내부와 두 배나 비싼 음식, 멋진 스튜어디스들, 들뜬 여행객들. 거기 앉아 있으면 여지없이 이전에 갔던 여행이 생각난다. 또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들은 나를 오래 붙든다. 생활이 제거된 장소라는 점 때문에 공항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거기엔 구두수선가게도 없고 세탁소도 없으며 생선가게나 철물점도 없다. 냄새를 피우거나 냄새가 나는 물건을 파는 가게가 필요 없는 곳이다. 오직 카페와 식당, 면세점이 있을 뿐이다.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다 잘 진열된 상품 중에서 몇 가지를 골라 사면 되는 것이다. 흥정도 없고 에누리도 없다. 모든 것이 수월하고 시원하고 간단하다. 돈과 시간만 있으면 된다.

인간한테 그런 욕망이 있다니. 생활이 휘발된,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 공간에 대한 향수라. 한번 마음을 먹고 나들이 삼아 인천공항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입국장면은 거기서 거기라 크게 볼 것이 없기 때문에 오는 길에 들르고 우선 출국장으로 향한다. 역시 돌아오는 사람들보다는 떠나는 사람이 할 말이 많다. 표정도 풍부하고 배웅객과 나누는 얘기나 몸짓도 다양하다. 만나는 게 아니라 헤어지는 순간이 주는 가지가지 드라마가 펼쳐진다. 게이트를 따라 슬슬 걸으면서 그걸 구경하다가 좀 피곤하면 패스트푸드점에서 커피를 사 가지고 한적한 곳에 마련된 인터넷카페로 간다. 오백 원짜리 동전을 넣고 인터넷 서핑 조금 하고 나서 공항에 온 사람들에 대한 스케치를 몇 자 적어본다. 요기조기 돌아다니다보면 뜻밖에 쉴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 거기서 휴식을 취하거나 잠깐 낮잠을 자도 누가 뭐라는 사람 없다. 돌아다니고 쉬는 일 둘 다에 지쳤을 때 출국 게이트로 가서 헤어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근래 들어서는 조기유학을 가는 어린 학생들이 부쩍 늘어서 안타까운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손 흔드는 엄마들을 많이 본다. 의외로 아이들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긴장한 얼굴이지만 자기가 닥친 현실을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변화나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두려움을 마비시켰을 것이다. 출장 가는 사람들 표정이야 뭐 대수로울 게 없다. 제일 볼거리는 헤어지는 연인들이다. 특히 둘 중 하나가 외국인인 커플은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혹은 그 나라로 돌아가는 즉시 상대가 변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인지 유독 애절하게 헤어진다. 하지만 공항의 맹점이 그거 아닌가. 일단 출국 게이트를 통과하면 바로 상대를 볼 수가 없다. 기차나 배처럼 눈물 콧물 짜며 손을 흔들고 떠나는 차를 따라 뛰어가거나 하는 이별과정이 생략되는 것이다. 그래서 남은 사람은 더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들은 충분히 달래지지 않은 이별의 아픔을 공항 벤치에 앉아서 달래다 리무진 버스에 오른다.

가방을 잃어버려 공항에서 기식하다가 아예 공항에서 몇 년째 살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도 있지만 갖춰진 시설로만 본다면 사는 데 불편은 없을 것이다. 나한테 그러라면 고개를 내젓겠지만 말이다. 공항에 가는 일을 그토록 즐기면서도, 초현대식 시설에서 살 수 있는데 나는 왜 그곳에서 살고 싶지 않을까. 과연 그 부족한 2%는 뭘까.

건물의 폐쇄성을 첫 번째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섬처럼 뚝 떨어진, 다른 건물과 고립된 구조. 소음 때문이겠지만 사방 몇 킬로미터 이내에서는 어떤 건물도 볼 수가 없다. 한 마디로 이웃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이웃과 담쌓고 살고 엘리베이터에서밖에 만날 일이 없다 해도 가까이에 누군가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웃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 아무리 소통부재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해도 내가 비명을 지르거나 어려움을 호소하면 돌아다볼 사람이라도 곁에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실제적인 관계가 맺어지지 않아도 타인이 근거리에 사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다른 이유를 또 하나 굳이 찾자면 숨을 곳이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도 설계도에 표시된 대로 쓰임새가 있고 위치 추적이 된다. 단 한군데도 허투루 만들어진 공간은 없다. 어떤 위치에 있어도 다 공공연하다. 아무도 모르는 곳, 찾기 힘든 곳에 숨고 싶을 때 갈 데가 없다. 변수가 없고 신비감이 없는 생활이란 마른 꽃처럼 향기가 나지 않는다. 먼지가 나고 곰팡이가 피고 개미가 오가는 구석방일지라도 내 공간이고 내 멋대로 할 수 있다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공항에서 하루 보내고 나면 알 수 있다. 쉴 수 있도록 아무리 오밀조밀하게 만들어진 곳이라 해도 다 공개된 장소라는 것, 빼앗긴 것도 없으면서 이상한 박탈감에 시달린다. 아무래도 나는 공항에 너무 오래 머무른 것 같다.

돌아오는 리무진 버스에서 나는 함께 탄 승객들과 이상한 동질감을 느낀다. 방금 이별의 아픔을 곱씹으며 탄 사람이든, 설레는 희망으로 입국한 사람이든 그들은 환상의 공간을 벗어나 현실에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잠깐 이탈했던 현실로 엉금엉금, 하지만 기꺼이 돌아가고 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우성이고 우여곡절이고 파란만장일지라도 우리는 소음과 냄새에 묻혀 삶의 길고 고된 노역을 치러낸다는 사실조차 잊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막 비상하기 시작한 비행기를 바라본다. 역시 하늘로 솟구치는 비행기는 아무리 봐도 멋있다. 잘 가라! 부디 아름다운 비행을 하기를!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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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이 | 2008/11/29 00:14 | 나의 산책로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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