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104 - 포옹 28

벽...
너를 떠올릴 때면 항상 벽이 함께 떠올랐다
마치 너의 옆구리나 너의 팔 한짝처럼
너의 분신이라도 되는듯이 네 몸과 함께 내 머릿속에 입력된 벽...

그땐 몰랐었다
그냥 넌 좀 까다롭거나 예민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아무리 뜨겁게 포옹을 해도
아무리 오래 서로 사랑을 속삭여도
너는 잠을 잘 때면 팔을 풀고
몸을 한바퀴 떼구르르 돌려 벽쪽을 향해 돌아눕곤 했다.
양 무릎 사이에 두 손을 끼우고 몸을 새우처럼 만 채로
곧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내가 아무리 너를 품에 안은 채 자고 싶어도 넌 언제나 그렇게 잠들고 싶어했다
몇 번 내 품에서 잠이 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너에게서 새근거리는 고른 숨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얼마 후 내가 먼저 잠이 들면 너는 팔을 풀고 벽쪽으로 가서 잠을 잤다

사실은 지금도 모른다
왜 넌 부드럽고 따뜻한 품이 아니라
차갑고 딱딱하고 막혀 있는 벽을 앞에 두고만 잠들 수 있는지..
하지만 끝내 묻지 못했다
너한테는 월급이 얼마냐거나
부모님이 어떤 분이셨냐거나
학교 때의 모습은 어땠냐거나
마지막 애인은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는 것보다 더 어려운 질문일 거라고 짐작했다

마지막까지 물어서는 안되는 것을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겠지
너한테는 아마도 너의 잠버릇이 그런 걸 거야
지금도 막연히 짐작만 할 뿐이다
다행이다
그걸 묻지 않아서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고
그 질문을 들었을 때의 너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랬다면 나는 아마 평생 그 표정을 잊지 못했을 거고
너를 더 오래 기억했겠지

가끔 생각한다
밤에 잠이 깨서 뒤척이다가
나도 모르게 무릎 사이에 손을 끼우거나 벽쪽으로 몸을 돌릴 때면
그것이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최소한으로 작게 만들어
어딘가에 숨기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이런 상상도 한다
지금쯤은 네가 넓은 침대에 네 활개를 펴고 누워
잠꼬대도 하고 팔도 내두르면서 쿨쿨 자는 모습을 그려본다
어쩌면 지금은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바람인지 기도인지 하게 된다
생각보다 허공은 너를 그리 짓누르지 않으며
침대는 너의 어떤 동작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넓고
세상은 호시탐탐 너를 공격하려고 노릴 만큼
너한테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모든 마음을 담아 인사를 전한다
안녕!

by 오제이 | 2009/01/12 08:20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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