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집을 비우려 합니다
여행이 좀 길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라도 주인 없는 집에 들른 방문객이 있다면
빈 집의 그 황량한 공기에 허허로운 마음 더 쓸쓸해진다면
집 떠나 있는 마음이 무겁고 쓰라릴 것 같습니다

비워둔 집은 곧 쑥대로 뒤덮이고 서까래가 내려앉겠지요
들이친 비바람에 벽지도 썪고
천장에는 거미줄이 칠 것이며
마루도 삐걱이고 쥐들도 드나들겠지요
수없이 내 등을 눕혔던 아랫목에도 곰팡이가 슬고 차가운 냉기로 뒤덮이겠지요
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무너져내립니다

한가지 희망을 말한다면
꼭 한가지 희망만은 가슴에 품는다면....
비 새는 지붕 위엔 밤마다 별이 반짝이고
비바람에 쓸려온 꽃씨 몇 알 쑥대밭에 떨어져 꽃을 피우고
더러는 나비와 벌들도 날아왔으면 하는 것입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문고리 떨어져 나간 집으로 들어설 때
그 꽃향기와 나비의 나부낌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밤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하고 싶은 말이나 듣고 싶은 말이 많을 때
내 집에 들렀던 많은 사람들이
이젠 더 이상 잠을 설치지도
다 하지 못한 말 때문에 가슴을 쥐어뜯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맙다는 말은 제 때 했는지
미안하다는 말은 충분히 전달했는지
여행가방을 든 마음은 천근만근입니다
세월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내 발자국과 손길이 머물렀던 그 세월들이 자꾸만 제 발목을 잡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마쳤을 때의 내 생각이 궁금해서
진실로 그 생각과 다짐과 깨달음이 필요해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못내 떼어놓습니다

아프지 말자
아프지 말자
다시는 아프지 말자
몇 번이나 중얼거리며 신발을 신습니다
다시 쓰러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 건강해지자
건강해야 두려움도 나약해지는 일도 없을 터이니...
강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을 향해 두 손을 내밀 수 있게 되기를...

빈 집을 돌아보며 마지막 기도를 합니다
생각보다 여행이 길어지지 않기를...
가슴 속 용서를 구하는 일이 너무 늦지 않기를...



by 오제이 | 2009/02/13 18:44 | 일상의 메모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ojchoi.egloos.com/tb/227228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at 2009/08/07 22: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아이 at 2009/08/17 01:31
어디서든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