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을 쓰기에 앞서

  











첫 문장을 쓴다.

  그 이전에 머릿속에는 인물이 있다. 인물이 만들어지기 전에 첫문장을 쓰기도 하지만 대개는 인물이 내 머릿속에서 내게 지시를 내린다. 지금 시작하려는 소설은 굳이 분류하자면 ‘역사소설’의 범주에 들 것이다. 큰 도전이고 엄청난 난제다. 몇 문장 생각해내는 데 몇 달이 걸렸다. 인물만 만들어지면 보통은 진도가 나가게 마련인데 역사소설은 시대를 복원하는 일이 어느 정도 전제되지 않으면 그것이 불가능하다.

  시대를 복원한다는 것은 자료와의 싸움을 말한다. 많은 책을 뒤지고 그것들 속에서 내가 찾는 의미 있는 내용을 발견해서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것. 그 수를 놓기 위해서는 문체를 정해야 한다. 문체에 대해 얘기를 시작하면 끝도 없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문체는 사람으로 치면 말투나 옷차림에 해당한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때로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말투라는 게 원래 사고와 감정의 반영인 경우가 많으니까.

  기존에 나온 역사소설은 인물과 사건의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었고 독자로부터 그에 호응하는 사랑도 받았다. 가히 역사소설 붐이라 할 만한 시기다. 그 소설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은 대개 제목부터 그러하듯 인물 중심의 얘기라는 것이다. 매력적인 역사 속의 인물을 발굴해서 그 인물을 중심으로 그 시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인물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 다음의 공통점으로 꼽을 수 있는 건 문체의 화려함이다. 아마도 역사 이야기가 고리타분하거나 지루할지도 모른다는 기우에서 비롯된 선택이 아닐까 싶다. 읽는 맛을 내기 위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화려하고 현란한 극도의 감성적인 문체로 대중의 눈을 사로잡는다. 작가의 고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과연 어떻게 무슨 얘기를 담은 역사소설을 쓸 것인가.

  몇 달의 고심 끝에 나온 결론치곤 속 싱겁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선 단순하게 가자는 것이다.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를 생각한다. 그리고 인물(그러니까 주인공)의 비중을 현저히 낮추려고 한다. 대신 그 시대에 살았던 보통 사람들의 삶을 그려주고 그것으로 시대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을(가제지만) ‘실학의 시대’로 정했다. 내가 마음먹은 걸 잊지 않기 위해서다. 몇 개의 장으로 구성될지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그 장은 가능하면 하나의 단편소설처럼 완결된 구조를 가졌으면 하는 것이 지금의 내 바람이다.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생각과 실험들을 가능하면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리려고 한다. 마치 영화감독이 디비디에 제작과정을 담는 것처럼 나도 내 작업의 과정을 스스로 즐겨보고 싶다. 

  따지고 보면 이번 소설은 간단하다. 지금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않는 것은 순전히 내 게으름 탓이다. 거의 다 나온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결정적인 자료를 뒤지는 일에 성심을 다 하지 않고, 몇 날 며칠이고 집요하게 매달려서 문장을 만들어내는 힘든 작업을 자꾸 미루고 있다. 뭐가 무서운 건지... 이건 게으름이나 직무태만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지금 막 첫발을 내디딘다.

  50년간 집권했던 영조가 죽고 서슬이 퍼렇게 개혁을 주장하는 정조가 왕이 되었을 때 백성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농사꾼은, 장사치는, 선비들은, 노인들은, 아이들은 그리고 여인들은 그 변화를 각자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자신의 삶 또는 부모의 전체를 관통하던 한 왕이 죽은 것을 어떻게 느꼈을까. 이 세상에 임금은 영조 한 사람만 존재했었고 그래야 하는 줄만 알았던 백성들은 심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그것을 어찌 소화했는지 궁금하다.

  새 임금이 주창하던 개혁정책은 또 백성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선비들은 효과적으로 왕을 보필했을까. 변화와 혁신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사람은 어디나 어느 시대나 있기 마련인데 그들의 획책은 또 무엇이었을까. 질문은 끝없이 이어진다.

  이 질문을 받아 담아야 할 것이 소설이라는 그릇이리라.

  과연 나의 주인공은 그 시대에 자신의 삶을 어떻게 꾸렸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안이 아닌 바깥에 관심을 가진 영특한 한 여인은 삶과 시대를 어떻게 조화시켰을까. 불화하지 않고 시대를 끌어안는 방법을 어떻게 얻어나갔을까... 참으로 숙제가 많다.

 

by 오제이 | 2007/08/07 15:19 | 문학 단상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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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7/08/07 23:1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루미스 at 2007/08/08 18:10
링크 가져갑니다.
역사를 보면 저는 현기증부터 나던데 그런 것들을 척척 쓰는 녀석들을 보면 정말 미친듯이 부럽더군요(과장이 절대 아닙니다-_-;;).그래서 이상하게 괜시리 슬퍼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슬픈 일도 아니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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