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7 - 증오를 다루는 법




1.

한 소녀가 까르륵거리며 웃는다
그녀의 양팔에는 두 개의 꽃다발이 안겨 있고
책상 위에는 선물이 가득했다
다른 소녀 하나가 그녀의 머리 위에 꽃가루를 뿌렸다
몇몇 친구들은 그녀를 에워싸고 노래를 불렀다
'Happy Birthday to You.....'
점심시간이 막 시작된 교실은 음식냄새와
환호성과 노래소리로 왁자했다
소녀는 몹시 행복한 표정으로 일어나
꽃다발을 양손에 들고
마치 선거유세에 나온 대통령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환호에 답했다

2.

등나무 벤치에 두 소녀가 앉아 있다
한 명은 꽃다발을 받았던 바로 그 소녀고
다른 하나는 그녀 옆에 조용히 앉아서 박수를 치던
그녀의 짝꿍이다
"생일 축하해!"
짝꿍은 마치 뱃속에서 끌어올리는 것처럼
묵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고마워."
그녀의 목소리는 경쾌하다.
호의에 익숙한 사람이 흔히 갖춘 산뜻함과 깍듯함이 배어 있다
"나중에 말이야..."
짝꿍은 말을 꺼내놓고 마치지 못한다.
"왜? 뭔데?"
"그냥. 미안하다구."
"뭐가?"
"네 생일선물 준비하지 못해서.
나중에 내가 졸업하고 돈벌면 그땐 네 생일선물 꼭 사줄게."
호의에 익숙한 소녀조차 얼굴이 달아오른다
짝꿍의 진심어린 말에 뭔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짝꿍의 집안형편을 반친구들은 다 알고 있다.
"괜찮아. 난 네가 나를 불러서 축하한다고 말해준 걸로 충분해."
"그래도 난 꼭 진짜 선물을 사주고 싶어."
"그래라, 그럼. 꼭 이 세상에서 제일 비싸고 멋진 걸로 사줘."

3.

두 소녀는 시간을 이기지 못했다
시간의 역할은 모든 만남을 헤쳐놓는 것임을 문득 깨닫는다
생일을 맞은 그녀는 오래 전 짝꿍을 기억해낸다
일상을 오로지 증오와 불안을 처리하는 일로 소모하던 그녀에게
다른 별의 얘기처럼 아득한 등나무 벤치에서의 일이 열쇠처럼 주어졌다
보라빛 등나무 꽃이 바람에 향기를 쏟아내던 그날
소녀는 자신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힘으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생일 축하해!"
짝꿍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기억까지 시간이 뺏어가진 않았다
그녀 속에 돌멩이처럼 뭉쳐 있던 증오가 모래알처럼 부서져
조금씩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녀의 몸은 아주 가벼워졌고 오랜만에 양팔을 활짝 벌리고
과장된 몸짓으로 하하하하 소리내서 한참동안 웃었다
그날, 짝꿍이 꼭 주고 싶다는 선물을 그녀는 오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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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이 | 2007/08/18 02:34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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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7/08/18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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