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8월 19일
짧은 이야기 8 - 드림카카오 99%

더러 특이한 성적 취향을 가졌을 거라고 짐작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내 주위에서 자기가 게이라고 당당히 밝히는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상황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어떻게 다음 대화를 이어가야할지
전혀 학습된 바가 없는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서 뭔가 다른 얘기를 조금 더 나누었다. 대화는 매끄럽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일 얘기를 마무리 짓고 커피를 마실 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질문이 실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혹시 여자를 사귄 적이 있나요?”
“그럼요.”
그는 마치 그건 모든 게이들이 다 경험하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대답했다.
“이건 더 실례가 될지 모르겠는데, 그럼 남자를 사귈 때 더 좋은 점이라도 있는지...
제 질문 참 이상하고 촌스럽죠? 근데 정말 궁금해서요.”
“실례랄 것까지야 뭐. 다들 궁금해 하죠.
제가 제대로 된 답을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 경우는 평온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서 좋아요.
심리적으로든 성적으로든 불만이나 요구가 적고, 더 안정적이고. 하여튼 평화로워요.
난 늘 평온한 사랑을 꿈꾸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여자와는 쓰고 격정적인 관계밖에 맺을 수 없었거든요.
평화를 누리기엔 여자가 너무 달콤한 존재잖아요.”
이번엔 고개를 끄덕여줄 수 없었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그는 가방에서 납작하고 네모난 물건을 꺼냈다.
“가령 이 드림카카오 같은 거죠.”
그는 포장을 뜯고 한쪽을 분질러서 내게 권한다. 은박지로 카카오 끝을 잘 감싸서 건네주었다.
“입안에 넣고 천천히 씹어 보세요.”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지독한 맛이었다. 쓰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시고 떫고 쓰고 도저히 삼킬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드림카카오라면서 무슨 맛이 이래요. 이름값을 못하네요."
“커피를 한 모금 마셔 봐요. 처음엔 다 그래요. 그래서 지옥의 맛이라고 불러요.
난 이 이름이 맘에 들어요. 뭔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아요?
특히 이 99%는 제게 담배보다 더 절실한 기호품입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가 카카오의 맛을 삼켰다고 해야 할까 빨아들였다고 해야 할까.
약간 구수한 맛이 나면서 카카오 향기가 느껴졌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지옥 창문으로 미풍이 불어오는 느낌이었다.
“그게 바로 제 연애와 닮은 맛입니다. 꿈이었다가 지옥이었다가.
그렇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중독의 맛이죠. 찻잔 속의 폭풍이랄까.”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왠지 마조히스트의 냄새가 나는 것 같군요.”
그는 입술을 양쪽으로 늘여서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당신은 지옥을 경험해보고 싶을 때 없나요?
난 그럴 때 드림카카오 세 조각을 곁들인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난 뒤 말보로를 피워요.
물론 요즘엔 그럴 필요를 거의 느끼지 않지만.”
“제 경우는 따로 지옥을 느껴볼 필요가 전혀 없는 걸요.”
인생 자체가 지옥 아닌가요? 라는 꼬리표는 달지 않았다.
“태연해져 봐요. 그냥 현실을 모른 척하고
마치 그것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살아보란 말이에요.
삶을 그렇게 있는 그대로 온몸으로 지고 있을 필요가 있나요?
더 무거울 뿐인데...
나는 드림카카오를 먹고 있는 동안은 내 인생이 아주 달콤하게 느껴져요.”
“충고 고맙습니다. 뻔뻔해지는 것도 전략이라는 것쯤은 저도 오래전에 터득한 바예요.
그런데 아직 드림카카오 99% 섭취량이 부족한가 봐요.”
그는 나머지 드림카카오를 포장지에 도로 넣어서 나한테 주었다.
“행운을 빌어요.”
# by | 2007/08/19 19:11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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