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9월 12일
짧은 이야기13 - 고백

나는 살인자입니다
어제 사람을 한 명 죽였거든요
그건 오래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고
지금은 차라리 마음이 편합니다
언제부턴지는 알 수 없어요
길에서 마주친 선량한 사람에게 미소를 보내듯 자연스레
그 사람의 목덜미나 배에 칼을 꽂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습니다
나도 모르게 바르르 떨리는 손을 꽉 붙잡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녀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본 게 잘못이었어요
몇 발자국 뒤에서 걸어가던 나는 그만 또 그 충동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리드미컬하게 흔들리는 그녀의 어깨와 허리와 다리에서는
음악소리라도 날 것 같았습니다
마치 그녀가 목각인형이라도 되는 듯
나는 단숨에 달려가 목을 부러뜨리고 싶었습니다
나는 거의 달리듯 걸어서 그녀를 앞질러갔습니다
얼마를 걸었을까요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숨이 찼습니다
내 손은 여전히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구요
그녀에게서 얼마쯤이나 멀어졌을까
나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녀는 십 미터쯤 앞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더군요
나도 그녀를 향해 걸었습니다
나는 시선을 그녀의 길고 멋진 다리에 둔 채로 살짝 웃어보였죠
그녀는 그런 시선 따윈 늘 겪는 일이라는 듯 태연히 나를 지나쳐 갔습니다
나는 몸을 돌려 다시 그녀를 따라갔습니다
검고 긴 머리가 그녀의 잘록한 허리 위에서 출렁거렸습니다
그녀가 골목길로 들어섰을 때
그리고 나를 한번 돌아보았을 때
나는 치타처럼 몸을 날려 그녀를 덮쳤습니다
그녀의 눈을 커졌고 잠시 후에는 더욱더 커졌습니다
그리고 곧 생선가시 같은 붉은 핏줄이 가득 찼죠
내가 그녀의 목을 있는 힘껏 졸랐으니까요
그때 그곳을 지나간 사람은 없었고
골목을 빠져나올 때까지 나를 본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 길로 천천히 내가 가고자 했던 술집까지
단한번도 쉬지 않고 걸어갔습니다
사람의 목을 조르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습니다
몸에 피 한방울 남지 않은 것처럼
기운이 하나도 없고
술이라는 연료를 붓지 않으면 몸이 곧 작동을 멈출 것 같았습니다
바텐더에게 양주 스트레이트 한잔을 부탁했습니다
그걸 한 입에 털어넣고 내가 방금 전에 저지른 일을 말했습니다
농담하기엔 아직 덜 취한 거 아니냐는 듯
바텐더는 술병을 들어보이며 한잔 더 하겠느냐는 제스처를 보였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한 잔을 더 마신 뒤 집에 돌아와 방금까지 잠에 곯아떨어졌습니다
이제 곧 누군가 나를 잡으러 오겠지요
나의 섬세한 묘사력에 힘입어 그 근처에서 난 살인사건과
내가 해준 이야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바텐더가 형사에게 말했을 테니까요
나는 살인자입니다
빨리 감옥에 가고 싶습니다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은 다시 살인을 저지르는 일 밖에 없습니다
내 손가락 끝에서 그녀의 혈관이 파르르 떨리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매끄럽던 목덜미에
내 손바닥 무늬가 찍히던 순간을 열 번 스무 번 리플레이시켜 봅니다
밖에서 거친 구둣발 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곧 떠날 것입니다
판사 앞에서 이 느낌을 말해야할까요?
내 평생 가장 행복하고 가슴벅찼던 순간을요.
나는 비로소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클라이막스에서 무대에서 내려오는 기분 나쁘지 않군요
이제 정말 이별을 고해야겠습니다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들이 차라리 이 자리에서 내 목을 졸라주었으면...
아닙니다
클라이막스는 한번으로 충분합니다
그럼 부디 안녕....
# by | 2007/09/12 14:44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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