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17 - 저 뚱뚱한 아줌마는 누구야?



휴일의 미술관은 어린애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이 꽤 많다
이럴 때 더욱 바빠지는 사람이 도슨트다
세련된 옷차림에 말끔한 말솜씨로
그림과 관람객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한다
단순히 그림을 그린 배경이나 화가에 대한 설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제작된 시대와 그림의 뒷얘기까지 들려주기 때문에 
얘기 듣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은근히 늘어나는 추세다

A씨 역시 시립미술관에서 도슨트 노릇을 한 지 반년이 되었다
노인관람객에게는 그 연세에 맞는 구수한 입담으로 설명을 하고
어린이들에게는 또 어린이가 원하는 얘기를 들려준다
미술관의 주요 고객인 이삼십대의 젊은 사람들한테는
용어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설명이든 역량껏 해주면 된다

십여 명의 초등학생 관람객이 A씨를 향해 다가온다
그녀는 한껏 어깨를 펴며 그림 설명할 준비를 한다
그 중 어떤 남자애 하나가 그녀를 보고 옆친구에게 묻는다
"야, 저 뚱뚱한 아줌마는 누구냐?"
"몰라, 근데 디게 뚱뚱하다, 그치?"

시선이 그녀에게 한꺼번에 집중되지 않고 이리저리 흩어지는 걸
감지한 그녀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는다
"제가 여기서 도슨트로 일한 지 반년이 되었습니다."
아까 그 소년이 옆친구에게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야, 저 아줌마가 도슨트래."
"그럼 뭐냐? 저 뚱뚱한 아줌마가 그림 설명해주는 사람이야?"
그녀는 두 소년을 주시하며 말을 잇는다
"반년 동안 일하면서 제가 알게 된 게 한 가지 있습니다."
관람객들은 그녀의 말에 귀를 모은다
"어린이들은 그림을 안 본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저기서 까르륵 웃음소리가 터진다.
"그러니까 그림 보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미술관 안을 부담없이 돌아다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보세요."
그녀는 그림을 설명하는 자기의 임무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구경했다
어쩐 일인지 아이들은 A씨 곁을 떠나지 않고
그녀의 시선이 멎는 그림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개의치 않고 그녀가 평소 맘에 들어하던 그림 앞에 서서
자기 방식으로 그 그림에 대한 호의를 표현한다.
"이 그림은 제목이 너무 어렵죠?"
아이들은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라는 제목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좀더 멀리, 또는 좀더 가까이서 그림을 볼 것을 주문한다
애들은 놀이를 하듯 미술관 안을 돌아다니면서
이 그림 저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해본다
그러는 사이 지루해할 틈도 없이 어느새
미술관 안의 그림을 다 둘러보았다

A씨는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여러분들은 어차피 그림을 보지 않았으니까
마지막으로 더 보고 싶은 사람들은 한번 더 둘러보고 집에 가서
오늘밤 자기 전에 눈을 감고 혹시라도 기억에 남는 그림이 있나,
그게 어느 층 어느 그림 옆에 있었는지 한번만 생각해봐요.
미술관은 숨은그림찾기 놀이를 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거든요."
애들은 웅성웅성 떠들면서 미술관 안으로 제각기 흩어졌다

by 오제이 | 2007/09/26 15:48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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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09/26 19:03
오오 맘에 드는 글입니다. 사실 미술관 안에서 진중히 그림만 보기는 참 어려운 일이죠. 미대생인 저조차 미술관 안에서 30분 넘게 있어본 적이 별로 없으니^^; 저 도슨트의 말이 참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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