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9월 29일
짧은 이야기 18 - 늙은 나를 만나고 온 날

차가 달리는 내내 길에서는 흙먼지가 날려
거리 풍경도 앞도 뒤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어딜까?
유난히 붉은 황토흙 위로 메마른 풀들이 납작 엎드린 곳.
누구는 화가들이 전세계를 여행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제각기 다른 땅의 색깔을 봐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동차가 멈춘 곳은 다섯 가구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도
가장 작은 집 앞이었다
뾰족한 지붕은 색이 바랬고 현관은 누추한데
마당의 텃밭은 어느 꽃밭보다 풍성하고 아름답게 가꿔져 있다
누군가 차에서 내린다
머리에는 꽃무늬 두건을 쓰고 커다란 가방을 든 마르고 키가 큰 여인
그녀는 현관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텃밭으로 들어가 가지 잎에 매달린 무당벌레를 떼어내 저만치 던진다
잘 익은 보랏빛 가지와 까슬한 오이, 토마토를 따 들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짐들은 집안에 놔둔 채 의자 하나를 들고 나온다
곧 해가 지려는지 붉은 땅이 펼쳐진 지평선에는 땅거미가 내린다
그녀는 홍차 한잔을 타 가지고 나와 의자에 앉아 노을을 맞을 준비를 한다
골이 깊은 주름과 드문드문 반점이 덮힌
그녀의 얼굴에는 기쁨도 슬픔도 미소도 회한도 없다
그저 나른한 육체의 피로를 차 한잔이 주는 평안함 속에 녹이고 있다
저녁을 준비하면서 내는 일상적인 소음과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동네를 조금씩 들썩이게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점점 짙어지는 노을빛이 비추지만,
마침내 삼십년쯤 전에 가졌음직한 발그레한 얼굴이 되었지만,
그녀는 다 마신 찻잔을 내려놓지 않고 무릎에 둔 채
날벌레들이 부산스레 잠잘 곳을 찾는 마당을 내려다본다
노을은 어느새 어둠으로 바뀌어 그녀 마당에까지 내려온다
그녀는 일어나 의자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집안에 불이 밝혀지고 현관 앞에 미등이 켜지는 순간
날벌레들은 일제히 그곳으로 모여든다
그녀의 집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 by | 2007/09/29 08:47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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