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10일
짧은 이야기 19 - 자일리톨과 비타민

택배 아저씨는 항상 내가 집에 없을 때 방문한다
"문앞에 두고 가세요."
그 대답에 열의 여섯은 망설이거나 불쾌감을 표현한다
내 직업정신을 뭘로 아는 거냐는 말투로
분실시 자기는 책임 없다고 다짐을 받는다
나한테 배달되는 물건의 대부분은 분실해도
사는 데 크게 지장이 없거나
누가 탐을 낼 만큼 값나가는 물건이 아니다.
커다란 사전 크기만한 택배 상자가 문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발신인은 없다
내용물이 무언지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식탁에 던져놨다가 옷을 갈아입고 나서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작은 박스 두 개가 들어 있다
납작한 건 자일리톨 컴 한 박스,
길쭉한 건 종합비타민 한 병.
카드도 메모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누가 나한테 이런 물건을 보냈지?
자일리톨 상자에는 '대한치과의사협회 공식 인증상품'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비타민 역시 'multivitamin'이라는 설명 말고
뭔가 힌트가 될 만한 문구는 없었다
택배상자에 적힌 광고문구를 보면서
자일리톨 껌 한 개를 꺼내서 씹는다
'언제 어디서나 저희를 불러주세요.
문에서 문으로 옮겨드립니다.
당신의 보이지 않는 손, 선샤인 택배!'
당분간 충치 걱정 안해도 되고
주근깨와 피로도 걱정 없겠지
비타민 하나를 입에 넣는 순간,
급기야 힌트를 찾아냈다
힌트는 발신인을 밝히지 않았다는 거다
내 주변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이런 짓을 할 사람은 한 사람 뿐이다
역시 싱겁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는 우정이다.
그 친구의 또 다른 특징은
무슨 말이든 행동이든 암호를 숨기는 버릇인데..
이번 건에는 대체 암호가 뭘까?
# by | 2007/10/10 23:03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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