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이글을 쓰려고 제목을 '용산'으로 정하고 나니
용산을 한자로 어떻게 쓸까, 궁금했다
아마도 용이 사는 산이라는 뜻일 거라고 짐작한다
용이라면 상서로운 동물이고 드높은 뜻을 가졌으니
옛날에는 분명 귀한 땅이었으리라고...

내게 용산은 서울의 첫얼굴이었다
여섯 살 때 맨처음 서울 땅을 밟은 나의 눈에 용산역은 눈을 의심하게 하는 곳이었다
소음과 바글거리는 사람들과 넓은 도로, 그 위를 메운 자동차들...
이렇게 바쁘고 붐비고 시끄러운 곳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경이 그 자체였다.
논과 밭과 들판과 새들과 한가로움이 매일 반복되는 풍경이었던 시골나기인
내게 용산은 그야말로 원더랜드와 다름 없는 곳이었다
활동사진을 처음 본 사람처럼 신기해서 눈을 어디다 둘 줄 몰라 몇 번이나 넘어질뻔했다
지금도 한겨울 용산역 앞 광장을 걸어나와 버스를 기다리던 그날의 풍경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삶이란 대체 얼만큼이나 짐작하고 살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대체 무엇을 얼마나 예측하고 살고 있는 걸까
어제 가본 용산역은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상전벽해라 부를 것이다
용산역에 붙어 있는 아이파크몰은 CGV를 포함해 식당, 백화점, 술집...
없는 것이 없었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했다
데이트를 하고 옷을 사고 영화를 보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신다
쇼핑몰 안에 꾸며놓은 공원은 또 사진 찍기에 폼나는 설치물들로 꽉 차 있는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역 건물을 나와 건널목을 건너는 동안 멀리 마천루라 불러도 손색없을 시티파크 아파트가 보였다
역주변에 사람들은 유난히 많았으며 방송국차까지 가세해서 아수라장이었다
길 하나만 건너면 동네 하나가 전부 철거되어 거의 초토화되어 있었다
화려한 쇼핑몰과 번잡한 도로와 철거현장 그리고 시티파크...
놀랍게도 그것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이토록 안어울리는 모습들이 한데 어울어져 있다는 것이 내겐 또 하나의 경이였다
어느 설치미술작가가 '오늘의 서울'이라는 제목으로 꾸며놓은 미술작품 같았다
양쪽 도로를 꽉 메우고 있는 경찰차도 그 부조화한 풍경의 하나쯤으로 여겨졌다
만가나 장송곡을 부르며 동네를 돌고 있는 철거민들 또한 풍경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전국에서 올라온 또 다른 우리들, 마음 가난한 사람들이 임시 분향소에 바치는 국화꽃도,
눈물도, 분노도, 고함도 아직은 그저 풍경으로만 존재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중앙에는 불타 얼룩진 건물, 참사현장이 있었다
전철역 바로 옆 대로변의 건물 안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건지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
이 풍경이 단지 풍경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임을 깨닫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가슴이 뜨거운 공감으로 가득 찰수록 우리는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용산 CGV를 갈 수 있고 아이파크 몰에서 퐁듀도 사먹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아프고 부끄럽다

by 오제이 | 2009/01/23 14:40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안녕, 추파춥스 키드>

안녕, 추파춥스 키드
최옥정 지음 / 문학의문학






드디어 첫번째 장편소설이 나왔다
정말 오래 기다리고 애태웠는데
막상 책을 받아보니까 반갑다기보다는
밖에 나가 고생하고 돌아온 못난 자식을 보는 마음이었다

소설이란 작가와 독자의 끝말잇기놀이 같은 거라고 늘 생각했었다
내가 한 단어를 말하면 그 끝말 하나에다 독자는 다른 말을  이어붙여
다른 단어를 만드는 것...
그러니까 나는 절반만 쓰는 것이고
의미를 붙이며 책을 완성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고..

첫번째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단 한명이라도 내 소설을 읽고
얼굴에 미소를 피워올리거나
씁쓸한 소주 한잔을 마시거나
쓴 커피나 담배를 찾게 되기를...

더 욕심을 낸다면
책꽂이에 꽂아두고 이따금 생각이 나면
책장을 넘기며 몇 문장 곱씹어 보기를...

홀가분하고 기쁘기도 하고
한편 진한 슬픔 같은 한숨이 나온다

어딘가에 있을
소설을 매파 삼아 만날 나의 독자를 생각하며
오늘밤은 잠을 설칠 것 같다

무엇보다 내 소설 속 주인공들,
대희와 희수...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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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by 오제이 | 2009/01/19 16:06 | 문학 단상 | 트랙백(1) | 덧글(7)

짧은 이야기 104 - 포옹 28

벽...
너를 떠올릴 때면 항상 벽이 함께 떠올랐다
마치 너의 옆구리나 너의 팔 한짝처럼
너의 분신이라도 되는듯이 네 몸과 함께 내 머릿속에 입력된 벽...

그땐 몰랐었다
그냥 넌 좀 까다롭거나 예민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아무리 뜨겁게 포옹을 해도
아무리 오래 서로 사랑을 속삭여도
너는 잠을 잘 때면 팔을 풀고
몸을 한바퀴 떼구르르 돌려 벽쪽을 향해 돌아눕곤 했다.
양 무릎 사이에 두 손을 끼우고 몸을 새우처럼 만 채로
곧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내가 아무리 너를 품에 안은 채 자고 싶어도 넌 언제나 그렇게 잠들고 싶어했다
몇 번 내 품에서 잠이 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너에게서 새근거리는 고른 숨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얼마 후 내가 먼저 잠이 들면 너는 팔을 풀고 벽쪽으로 가서 잠을 잤다

사실은 지금도 모른다
왜 넌 부드럽고 따뜻한 품이 아니라
차갑고 딱딱하고 막혀 있는 벽을 앞에 두고만 잠들 수 있는지..
하지만 끝내 묻지 못했다
너한테는 월급이 얼마냐거나
부모님이 어떤 분이셨냐거나
학교 때의 모습은 어땠냐거나
마지막 애인은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는 것보다 더 어려운 질문일 거라고 짐작했다

마지막까지 물어서는 안되는 것을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겠지
너한테는 아마도 너의 잠버릇이 그런 걸 거야
지금도 막연히 짐작만 할 뿐이다
다행이다
그걸 묻지 않아서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고
그 질문을 들었을 때의 너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랬다면 나는 아마 평생 그 표정을 잊지 못했을 거고
너를 더 오래 기억했겠지

가끔 생각한다
밤에 잠이 깨서 뒤척이다가
나도 모르게 무릎 사이에 손을 끼우거나 벽쪽으로 몸을 돌릴 때면
그것이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최소한으로 작게 만들어
어딘가에 숨기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이런 상상도 한다
지금쯤은 네가 넓은 침대에 네 활개를 펴고 누워
잠꼬대도 하고 팔도 내두르면서 쿨쿨 자는 모습을 그려본다
어쩌면 지금은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바람인지 기도인지 하게 된다
생각보다 허공은 너를 그리 짓누르지 않으며
침대는 너의 어떤 동작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넓고
세상은 호시탐탐 너를 공격하려고 노릴 만큼
너한테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모든 마음을 담아 인사를 전한다
안녕!

by 오제이 | 2009/01/12 08:20 | 짧은 이야기 | 트랙백

빈말

"빈말은 빈말이 아니다"
혼자 중얼거린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말로
'마사지 했어? 얼굴에 윤기가 나네'
한마디 했을 뿐인데 친구는 반색을 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만져보며 정말? 물으며 웃는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말,
빈말은 결코 비어 있는 말이 아니다, 였다

진심에서 우러난 게 아닌,
그냥 입에 발린 말을 할 때 우린 그 말은 빈말이라고 부른다
약간의 비아냥이나 딴 의도가 섞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 나는 우리가 얼마나 달콤한 말에 굶주려 있나 생각했다
우리가 하는 인사의 말들을 그저 빈말이라고 간단히 말해버려고 괜찮은가?
빈말이라도 좋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누군가에게 기분 좋은 말, 듣기 좋은 말을
되도록 많이 해주는 게 좋겠다고...
그것은 결코 빈말이 아닐 것이다
상대를 기분좋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실려있는' 것이니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는 특히 이런 말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잘 했어. 이런 생각은 너밖에 못할 거야'
'수고 많았다. 이번 작품이 제일 좋은 것 같아.'
'기뻐하긴 아직 일러. 아직 멀었어. 넌 이보다 훨씬 잘 할 수 있는 사람이야'
힘을 주는,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격려의 말은
비록 사실이 아닐지라도 창작자의 어깨를 펴주는 말들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빈말조차 아까워할 만큼 인색해진 관계들 속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날카로운 비판과 분석에만 너무 열을 올린 것은 아닌지
한 사람의 예술가가 자신의 혼을 실어 무언가 만들어냈다면
완성도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아울러 앞으로의 작업을 위한 건강한 빈말 한마디쯤은 해줄 수 없는가
독자로부터 빈말로라도 소설 좋다는 말 듣고 싶다던
어느 중견 소설가의 말을 다시금 곱씹어본다



by 오제이 | 2009/01/09 09:23 | 일상의 메모 | 트랙백

운동화 빠는 아침

운동화를 즐겨 신는 나는
가끔 날을 잡아서 신발장의 운동화를 모조리 꺼내 빨곤 한다
깨끗이 빨아서 새것처럼 바뀐 운동화를 신는 기분은
새 운동화를 신을 때와는 비교가 안되게 산뜻하다

하지만 운동화를 제때 빤 적은 별로 없다
더러워지면 신발장 뒤쪽으로 밀렸다가
나중에 몰아서 한꺼번에 빤다
검은색이나 청색 종류는 잘 빨지도 않는다
흰색이나 베이지색 연두색 같은
옅은 색은 더러움이 잘 타서 빨지 않을 수도 없지만
빨고 난 뒤에 달라진 모습을 보면 수고가 아깝지 않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기분이 가라앉아서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일 때가 있다
이런 때는 보통 차를 한잔 마시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기분을 북돋우려고 애쓴다
그래도 소용 없을 때는 가벼운 산책을 하기도 하고
다시 잠을 자기도 하고
어려운 책을 꺼내 읽기도 한다
머리를 쓰면 의외로 감정이 가벼워질 수도 있다

그밖에 실용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다림질과 운동화 빨기이다
구겨지거나 더러운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다른 표현이라고 말하면 조금 과장이겠지만
어쨌든 뭔가를 땀흘려 하고 나면 웬만한 건 해소된다

운동화를 몇 켤레 빨아 널고
창밖을 보니 해가 환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새 아침...
이제부터가 오늘이라고 다짐한다
무거우면 무거운 대로 가벼우면 가벼운 대로
내가 살아내야할 또 하나의 하루, 오늘

저 운동화가 마르면 신고서 제일 먼저 어디를 갈까?
자못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by 오제이 | 2009/01/06 08:22 | 일상의 메모 | 트랙백